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0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CEO) 제주하계 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윤석열 정부가 기업활동에 파급효과가 큰 범부처 복합규제인 ‘덩어리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국무조정실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해고 제한 규정,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등을 ‘덩어리규제’로 규정하고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규제혁신’을 내세워 해고 사유 확대 등을 추진할 경우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
7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무조정실의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 목록을 보면, △해고 사유 확대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 △기간제·파견 활용범위 확대 등 고용 유연화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노사관계 분야에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노조 파업 때 대체근로 금지조항 개선 △노조의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신설이, 산업안전 분야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사업장 안전 규제 중복 해소 등이 들어가 있다.
이는 경제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이면서, 동시에 노동계가 크게 반대해온 사안들이다. 대표적으로 해고 사유 확대와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변경요건 완화)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 ‘양대지침’이라는 가이드라인으로 시행했다가 극심한 노사·노정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도 국무조정실은 사실상 경제단체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한 내용을 덩어리과제로 정리한 뒤 고용노동부와 국책연구기관 등에 내려보내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조정실이 ‘규제혁신’의 방향을 규제의 관리나 합리화가 아닌 완화에 맞춰놓고, 담당 부처와 기관에 이를 뒷받침할 후속 연구과제를 정해준 셈이다.
국무조정실이 검토하고 있는 덩어리과제는 노동부가 그동안 밝힌 노동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노동부는 자체 진행하고 있는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이외의 개혁과제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이는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포함된 사항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과제들은 국무조정실과 논의 중이며,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노동 분야 규제개혁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지난달 20일 제주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는 “우리나라 투자환경을 어렵게 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세제와 노동·환경·교육 분야의 규제 개혁부터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무조정실이 검토 중인 덩어리과제가 규제개혁 명목으로 추진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무조정실이 만들고 있는 규제혁신추진단(단장 한덕수 총리)의 분야별 10개 팀 가운데 ‘고용노동팀’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 출신 퇴직 공무원이 팀장을 맡고, 노동부 퇴직 고위관료 역시 자문위원으로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진단은 이달 말 현판식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국무조정실은 8일 보도설명자료를 내어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 목록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과제의 목록이 아니라 민간 건의사항 등을 실무적으로 정리한 자료”라며 구체적 목록도 “단순 예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