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킬 이슈’인 해고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해묵은 과제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중략) (노동개혁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서 어느 일방의 숙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지난 6월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 언론 브리핑에서 ‘현 정부의 노동개혁이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공식 답변이었다. 그러나 7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무조정실의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 목록을 보면 △해고 사유 확대 △기간제·파견 활용범위 확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등 경영계 “일방의 숙제”들이 집약돼 있다. 국무조정실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패싱’에 가까운 고용노동 ‘규제개혁’을 검토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등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표적으로 ‘해고 사유 확대’가 그렇다. 이 장관은 해당 브리핑에서 해고 문제를 “킬 이슈”라고 언급하며 “해고와 관련된 내용은 어렵지 않나, 현재 추진과제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까지 밝혔다. 덩어리과제에 포함된 또다른 내용인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지난달 27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범위 확대를 검토한 바 없다”며 “노사관계 법제도 전반의 개선에 대해서는 추후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대화 추진, 논의과제·세부운영방식 등은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여 결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학습’하고 있는 고용노동부는 개혁과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태도다. 특히 정권 초부터 민감한 개혁과제를 추진했다가는 정치적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소야대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법 개정이 어렵다는 인식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무조정실과 경제부처들이 기업의 ‘신발 속 돌멩이’를 제거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면서, 노동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新) 정부에 바라는 노동개혁 방안’(3월24일 작성)을 보면, 경총은 “노동개혁과 법제도의 선진화는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해야 한다”며 “관성적으로 ‘노사정 대타협이 좋다’ 식의 접근은 중요한 개혁을 지연시키고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8일 보도설명자료를 내어 “규제개혁은 주관부처가 중심이 되어 수행하는 것”라며 구체적 목록도 “정부가 이 과제를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려 한다거나 국무조정실이 고용노동부를 ‘패싱’하려 한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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