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1월1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중재 2일 차 심리에서 한국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린저’의 변호인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며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상설중재재판소에 낸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서 재판소가 한국 정부에 손해를 일부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추가 소송 비용과 이자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면 불복 절차인 ‘판정 취소’ 신청엔 신중해야 한다. 판정이 확정되면, 손해배상의 원인을 만든 박근혜·이재용 두 사람에게 배상금을 변제받아야 한다.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채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최대주주이던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회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찬성에 가담해 합병안이 가결됐다. 검찰 수사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따라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이번 중재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담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 의해, 국가가 주주행동주의 펀드에 손해배상을 하는 상황은 착잡하다. 우리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을 두고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가 낸 소송에서 졌고, 그 외 몇 건은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 지분 2.18%를 갖고 있던 메이슨 캐피탈이 엘리엇과 같은 이유로 낸 소송은 패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세금을 내주는 일은 달갑지 않지만, 실익이 없다면 판정 취소 신청을 할 이유는 없다.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이 너무 싸다며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고 4.95% 지분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했는데, 2.1% 지분을 가진 일성신약은 나중에 대법원 확정판결로 주당 9368원을 더 받았다. 엘리엇도 소송을 냈다면 당시 가격으로 720억원가량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재판소가 배상하라고 한 5359만달러(현재 환율로 약 690억원)와 비슷한 액수다. 우리 정부는 소송에 져서 지연이자와 법률비용도 물어줘야 한다.
정부가 결국 돈을 물어준다면 불법행위로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변제하게 해야 한다. 부당한 지시를 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구상권을 행사하고, 불법 청탁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한테는 국가의 손해를 배상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