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연합뉴스
감사원이 지난해 7월 내부 훈령인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을 개정해 국무총리에게 감사청구권을 부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감사원법에 따라 총리는 공공기관의 회계감사만 청구할 수 있는데, 하위 법령인 훈령을 개정해 총리가 공직자 직무에 대한 감찰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감사원은 헌법에 따라 직무 독립성을 보장받기 때문에 국무총리는커녕 대통령도 감사원 감사에 개입할 수 없다. 정치적 목적의 ‘표적 감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훈령 개정으로 헌법과 법률의 취지를 무시하고 감사원을 사실상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었다.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가 감사원에 그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의 위상을 바꾸는 이런 사안을 법률도 아닌 훈령 개정으로 처리한 것은 국회를 거치지 않도록 하려는 꼼수로 보인다.
감사원 훈령 개정은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추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위가 지난해 4월 발간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보면, 감사원의 ‘국무총리 감사요구권 활성화(직무감찰 사항 포함)’가 포함돼 있다. 당시 인수위에는 유병호 현 사무총장이 감사원 몫 전문위원으로 파견돼 있었다. 감사원 훈령 개정은 그가 사무총장에 취임한 지 20일 만에 이뤄졌다. 또 최재해 감사원장은 훈령 개정 직후인 지난해 7월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감사원이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답해 여당 의원조차 당황하게 했다. 유 사무총장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태양광 사업 등 전 정권 추진 사업, 국민권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 등 전 정권을 겨냥한 대대적인 감사를 지휘했다. 이처럼 훈령 개정부터 감사원장의 발언, 그리고 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까지 모두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기자들과 한 약식문답(도어스테핑)에서 “감사원 업무에 관해서는 (대통령실이) 관여하는 것은 법에도 안 맞고 또 그런 무리를 할 필요도 없다”, “감사원 업무는 대통령실에서 관여할 수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돼 있다”고 말했다. 그때 이미 훈령을 개정한 뒤였다. 헌법과 법률 취지를 거스르며 말로만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이중적 태도다. 총리실을 앞세워 대통령실이 원하는 ‘표적 감사’를 마음껏 진행하려 하나. 말과 행동이, 겉과 속이 다르다. 윤 정부는 감사원의 독립성을 원상복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