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눈물을 닦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법원이 화력발전소에서 밤샘 작업을 하다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사건에서 원청 대표이사의 무죄를 확정했다. 2018년 이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만이다. 김씨의 처참한 죽음을 계기로 ‘산재왕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정작 김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하청노동자의 산재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다. 산재가 발생할 위험을 알고 있어야 과실이 인정되는데 당시 김 전 대표는 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일터인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모든 설비에 대한 소유와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다. 사업장의 설비가 얼마나 위험한지, 어떤 안전설비가 필요한지 파악하고 관리할 책임은 원청에 있다. 그런데도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사업장의 산재 위험을 몰랐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니, 이런 판결을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 논리대로라면 사업장의 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게 아닌가. 노동계는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산재 책임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판단을 지목한다. 사법부는 이런 지적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김씨는 2018년 12월11일 새벽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컨베이어벨트의 안전 덮개는 열려 있었고, 야간 근무 중인데도 조명이 꺼져 있었다. 비상정지장치도 불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2인1조’ 근무가 원칙인데도 혼자서 휴대전화 불빛에만 의지한 채 일을 해야 했다. 검찰은 원·하청 기업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지만, 무죄와 집행유예가 선고돼 실형을 받은 이는 단 한명도 없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노동자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시해 ‘솜방망이 처벌’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 4월 ‘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로 주목받은 사건에서 원청사 대표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돼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이번 대법 판결이 사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