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최혜정 | 논설위원
출범 초읽기에 들어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용산 직할’ 선언의 다른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의힘은 당대표가 두번 ‘날아간’ 초유의 사태 속에 세번째 비대위를 맞이하게 됐다. 내년 4월 총선을 기준으로 윤 대통령 재임 23개월 가운데 11개월이 여당의 ‘비상사태’ 국면인 것이다. 이준석 축출 뒤 들어선 김기현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바지사장’ 요구를 거부한 뒤 탈출했고, 대통령실의 신호에 따라 의원들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지명자를 ‘강감찬’ ‘이순신’에 빗대며 대세론을 굳혀왔다. 성공한 비대위의 공식인 ‘차별화’ 대신 또 다시 ‘일체화’를 택한 국민의힘은 그나마 한 지명자가 ‘대통령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데서 위안을 찾는 모습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뒤 분출된 위기론과 쇄신 요구는 최종 목표인 윤 대통령에게 말도 못 꺼낸 채 사그라들었고, 당은 지지율 30% 초반의 윤 대통령 영향력으로 총선을 치를 참이다.
한동훈 비대위는 윤 대통령 총선 구상의 정점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에 임하는 자세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리고 공천은 ‘용산’이 한다는 것이다. 총선 패배는 곧 식물 대통령을 의미한다는 공포, 그리고 임기 말 레임덕 방지를 위해 ‘내 사람’을 심어야 한다는 조바심이다. 이 둘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현재 국정의 최우선 목표는 여당의 총선 승리로 수렴됐다. 상징적인 장면은 내각 인사로 드러난다.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장차관들은 총선의 공깃돌로 전락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을 후임 장관 지명도 않은 채 당으로 끌어들이면서 누구도 행정 공백 우려를 해명하지 않는다.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취임 석달 만에 수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수원 지역구 탈환을 위해 차출됐다. “핵심 전략 산업 육성 및 규제 혁신, 수출 증진, 안정적 에너지 공급 등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로 판단된다”더니, 임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내보냈다. 산업부 안팎에서는 수출과 원전을 챙기랬더니 석달 만에 ‘수원’을 챙기러 간다는 푸념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국가 전체로 보면 이익”이라며 눙치지만, 국회의원 1석이 장관 자리보다 중요하다는 계산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취임 6개월이 갓 지난 차관들에 대한 차출설도 끊이지 않는다. 내각이 총선 출마자의 ‘경력 인큐베이터’로 전락한 것이다.
여권 인사들은 거대 야당이 발목을 잡아 정부가 일을 못 한다고 성토한다. 국회 과반 의석으로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총선에서 이기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 철학과 방향을 제시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책 혼선은 윤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나 지시를 일선 부처가 수습하면서 촉발된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만 5살 초등학교 입학’,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대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 논란으로 번진 ‘공정 수능’ 등은 모두 윤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했다. 무엇보다 현재 여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다.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에 고위직 중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해병대원 순직 수사 무마 의혹에는 윤 대통령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선거 원인 제공자를 사면·복권해 구청장 선거를 정권 심판 선거로 만든 이는 윤 대통령이다. 여기에 국민을 기함하게 한 명품 백 수수 의혹, 외교 현장에서의 명품 쇼핑 등으로 여론 악화를 자초한 이는 김건희 여사다. 모든 오판과 논란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있는데, 대통령은 고요하고 대통령실은 인적 쇄신 무풍지대다. 애꿎은 당만 ‘할 말을 못 한 죄’로 책임을 떠안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으로 여권의 고질적 문제인 수직적 당정관계는 오히려 강화됐고,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더욱 세질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찐핵관 심기’ 작업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당보다 지지율이 낮은(한국갤럽 기준), 인기 없는 대통령이 자신의 얼굴로 총선을 치러 승리할 방도를 찾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는 김건희 특검법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부 심판론은 정부 지원론을 앞지른다. 한동훈 비대위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라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제)을 어떻게 풀어낼지, 아니 과연 풀 수 있을지가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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