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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각 발언’

등록 2014-03-10 18:38수정 2014-03-10 22:15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증거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중국 정부가 문제의 문서들을 위조로 결론 내린 사실이 지난달 14일 밝혀진 뒤 거의 25일이 지난 다음에야 나온 첫 공식 반응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입장 표명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말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오랜 침묵은 그 자체로 사건의 엄중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의 반증이며, 국정 파악 능력의 심각한 허점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판단 착오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국정원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이 불거진 뒤 국정원은 계속 증거조작 의혹을 전면 부인해왔다. “중국 정부에서 위조라고 밝힌 것은 발급 절차상의 문제일 뿐 ‘내용의 위조’는 아니다”는 식의 주장도 펴왔다. 박 대통령 역시 아마 남재준 국정원장으로부터 그런 식의 왜곡된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이 높다. 국정원이 A4 용지 20장 분량의 자체 조사보고서를 만들면서도 ‘조작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처음부터 진실을 은폐하기로 작정했음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남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수뇌부는 계속 진실을 숨기면서 박 대통령한테도 잘못된 정보를 입력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국정원이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계속 책임 회피와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일 밤에 발표된 사과문에서도 국정원이 잘못을 뉘우치거나 진심으로 국민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물의를 일으킨 것 말고는 실제로는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이제부터 국정원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펼 것이다. 국정원이 사과문에서 “관련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밝힌 것도 하급 직원 몇 명한테 책임을 덮어씌우고 남재준 원장 등 수뇌부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박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는 권력 내부의 견제와 상호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국정원이 왜곡된 보고를 해도 청와대의 다른 기능에서 이런 잘못을 지적하고 대통령의 인식을 바로잡아야 제대로 된 조직이다. 이번 기회에 권력 내부의 작동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해보길 권한다. 둘째는 이번 사건의 처리 방향이다. 이제는 단순히 증거조작의 진상규명뿐 아니라 국정원의 사후은폐 실상까지도 수사 대상이 돼야 할 상황이다. 이 대목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셋째, 남재준 원장의 거취 문제다. 남 원장이 고의적으로 대통령을 속였는지는 확실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지만, 그것을 떠나서도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완전 미달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남 원장 해임은 박 대통령이 이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짓기 위한 첫번째 선결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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