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그룹의 신동빈(61) 회장이 20일 검찰에 불려 나와 ‘2000억원대 배임·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1967년 롯데그룹 창립 이래 총수가 검찰에 피의자로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국내 5대 그룹 가운데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에 이어 네번째다.
6월10일 신동빈 회장의 자택과 주요 계열사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된 롯데그룹 수사는 이제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검찰은 신 회장과 부친 신격호(94) 총괄회장, 형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 등 총수 일가를 대거 기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8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7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전의 재벌 비리와 비교해 롯데그룹의 경우는 비리 혐의에 안 걸리는 총수 일가가 거의 없고, 또 혐의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건설의 3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거액의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혐의, 일본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매년 100억원대 급여를 수령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서미경씨는 주식 편법 증여 과정에서 수천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 계열사에서 수년에 걸쳐 400억원대의 ‘공짜 급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가히 ‘비리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비리가 이렇게 첩첩이 쌓인 데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황제 경영’ 탓이 크다. 총수 일가가 각종 비리를 반복해서 저지르는데도 구조적으로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못했다. 퇴직한 계열사 임원을 사외이사로 앉히고 감사까지 맡겼으니 내부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10대 재벌 가운데 지주회사가 비상장사인 곳은 롯데그룹이 유일하다. 외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협력업체 쥐어짜기와 골목상권 침해 문제에서 롯데그룹이 특히 원성을 많이 산 것도 이런 지배구조와 연관이 깊다.
롯데그룹은 이번 수사를 계기로 과거의 잘못된 경영과 단절해야 한다. 총수 일가가 어떤 처벌을 받든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혁신하고 이제부터라도 윤리경영에 나서야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 조사를 받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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