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대통령 발의’에 떠밀려 개헌 협상 나서는 국회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예고대로 26일 전자결재를 통해 개헌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개헌열차’가 마침내 출발한 것이다. 국회는 절차에 따라 ‘60일 이내’에 가든 부든 의결을 해야 한다. 개헌안이 대통령 손을 떠나면서 이제 책임은 온전히 국회의 손으로 넘어왔다. 국회가 합의해서 ‘국회 안’을 내면 개헌이 되는 거고, 합의에 실패하면 ‘대통령 개헌안’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이 물거품이 되면 그 책임 또한 국회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이 26일 만나 개헌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국회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여야 교섭단체들이 정례적으로 만나 개헌안 협상에 나서기로 한 건 의미가 있다.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되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에 더해 조만간 교섭단체로 등록할 민주평화당·정의당도 참석한다고 한다. 개헌 논의를 밀도 있고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면 논의 테이블부터 마련해야 한다. 4개 교섭단체에서 2명씩 참여하는 ‘8인 협의체’가 현실적이다. 1987년 개헌 당시 ‘여야 8인 정치회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각 정당의 내부 이견 조율도 서둘러야 한다. 개헌 논의기구가 꾸려져도 당론이 확정되지 않으면 알맹이 있는 토론을 진행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평화당이 이날 ‘국회 총리 추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명문화한 자체 개헌안을 발표한 건 평가할 만하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개헌안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원색적으로 비난만 하는 건 명분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독재 개헌’ 운운하는데, 사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설령 대통령 개헌안대로 개헌이 되더라도 현 대통령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지금 개헌을 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개헌안을 반대할 수는 있지만 사안을 왜곡하고 호도해선 안 된다.

국회가 지금이라도 논의를 서두르면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2022년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6월 개헌’이 정히 어렵다면, 일단 개헌 내용과 시기를 명확히 합의한 뒤 국회가 정식으로 대통령에게 ‘대통령 안’의 철회를 요청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가 부결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