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사그라들었던 ‘개헌-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불씨가 6·13 지방선거 이후 살아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등은 ‘선거의 비례성’과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표결을 거부했지만, 최근 들어 “개헌-선거제도 동시 개편” 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야권은 특히 비례성 강화를 뼈대로 한 선거제도 개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치권의 오랜 숙제인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20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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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 공세 나선 야당, 왜? 최근 야당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개헌-선거제도 개편을 하반기 국회의 주요 의제로 내놓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는 개헌 논의, 권력구조·선거구제 개편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김관영 바른미래당 신임 원내대표도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 문제를 야당이 공조해 올해 안에 꼭 풀어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이었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권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데는 ‘현실적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광역의원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졌는데, 여기서 참패하면서 ‘승자독식’의 문제를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례로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부산시의회에서 90% 이상의 의석을 독식해왔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36.73%의 정당득표율을 얻고도 47석 중 6석(12.77%)밖에 건지지 못했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자유한국당은 25.47%의 정당득표율을 확보하고 전체 의석 135석 가운데 4석(2.96%)을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그대로 차기 총선에 대입할 경우,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하곤 사실상 ‘몰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가 2020년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한 지역구에서 2~3명의 의원을 뽑거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보수야당만이 아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 기득권 양당 체제에서 생존해야 하는 군소정당들에도 선거제도 개편은 숙원사업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8.97%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확인한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속내는 다르지만 생존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야권 공동의 전선이 구축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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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이대로면 제1당인데…” 여당인 민주당은 야당의 개헌 주장에 대해선 “시기가 아니다”라며 일축하고 있다. 다만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는 심기가 복잡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2년도 남지 않은 차기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 계산이 앞선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당내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해보면 ‘이대로 가면 제1당이 될 텐데 굳이 나서야 할 이유가 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내건데다, 여당 내에서도 그동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대체로 찬성해왔기 때문에 야권의 요청을 묵살하기는 쉽지 않다. 여당 내에선 민주평화당, 정의당과의 정책 연대를 위해서라도 야권의 선거제도 개편 주장을 전략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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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국회, 정개특위 꾸려 논의할까 이에 따라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하반기 국회에서 정치개혁위원회(정개특위)를 새로 꾸리자는 야당의 협상 요청에 여당이 응하는 모양새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핵심 관계자는 “선거법 개정 문제는 개헌과 달리 총선 전에 미리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해묵은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이번 국회에서 매듭지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각 당이 대체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공감하고 있어 정치권의 총의를 모으긴 어렵지 않지만, 이 경우 현재 47석인 비례대표 의원 수를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에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 비례대표 의석 증가분만큼 지역구(253석) 의석을 줄이는 방안의 경우엔, 각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 의원 정수 확대는 국민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대국민 호소가 필수적이다.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현실화’까지는 남은 과제가 여전하다는 뜻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