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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징계 아닌 수사 대상이다

등록 2018-05-28 18:37수정 2018-05-31 11:23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을 놓고 뒷거래를 시도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최근 공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사법부가 이렇게까지 타락했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대통령과 독대에 앞서 준비했다는 ‘말씀자료’ 등에는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판사들의 시대착오적인 인식과, 법률가의 표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정략적 용어들이 가득하다.

국정원 댓글공작으로 기소된 원세훈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문제가 심각하다. 원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2심 판결 당일(2015년 2월9일)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은 ‘국정원 선거개입(원세훈) 사건 항소심 선고 보고’ 문건을 작성해 임종헌 기획조정실장에게 보고했다. 여기엔 나중에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2심 판결을 파기하는 근거가 되는 ‘증거능력 인정 여부-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 등 상고심 예상 쟁점이 담겨 있다. 문제는 이 문건이 원세훈 사건을 맡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그대로 전달됐다는 점이다. 특조단은 “사법행정 담당자가 갖고 있던 시각이 소송 외적인 통로로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법원에 전원합의체 심리 요구 등 관심을 표명해온 사실까지 고려하면, ‘박근혜 청와대’의 바람이 행정처를 통해 결국 전원합의체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문건까지 나왔으니 청와대와의 뒷거래 의혹을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냈던 대법관들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2015년 3월 문건에서는 ‘사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사건 처리 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원세훈 사건과 함께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거론했다. 전교조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며 말씀자료에서 예시한 16개 사건(2건은 이명박 정부 사건)에도 포함됐다. 또다른 문건에선 스스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적었다. 특조단은 “문서대로 실행된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으나, 행정처가 주요 하급심 판결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상고법원 추진 등 대법원장의 방침에 반대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소속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도 확인됐다. 그러나 특조단은 “조직적 체계적으로 불이익을 줬다는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연구회 와해 시도에 대해 직권남용 고발 대신 징계 의견을 내는 선에서 그쳤다. 특정 언론과의 유착 의혹을 보여주는 파일들도 발견됐으나 특조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3차까지 보고서를 통해 재판권 유린의 물증이 드러났는데도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며 이상하리만치 ‘양승태 대법원’을 감싸는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와 무관한 것인지 의문이다.

자체 조사의 한계를 벗지 못한 판사들만의 ‘셀프 판결’로는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수도 없고 법원의 신뢰 회복도 어렵다. 고발장이 접수된 이상 검찰 수사로 철저히 밝히고, 그래도 모자라면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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