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이 질문하자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4)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례적인 재판 지연으로 2018년 11월 기소된 뒤 결심공판까지 5년이나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결심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기획조정실장으로 약 3년, 차장으로 1년6개월 등 오랜 기간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면서 사법부의 이익 실현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 “피고인 지시로 과연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내용이 담긴 문건들이 다수 생산됐고 실제 실행에 옮겨졌으며 그 과정에서 심의관들과 일선 재판부 법관들은 사법부 이익 실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무리하게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비리 판사를 비호하는 등 부당한 지시를 내린 혐의로 2018년 11월14일 기소됐다. ‘박근혜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일제 전범기업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재상고심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부당 개입한 ‘재판거래’ 의혹,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줬다는 ‘인사 개입’ 의혹 등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만 30개가 넘는다.
임 전 차장은 이 사건의 검찰 수사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재판거래를 사법농단이라는 거창한 프레임 하에 기정사실로 전제하며 시작”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임 전 차장은 최후진술에서 “법원 재판과 반대로 사법행정은 판사가 극히 나약한 을의 지위에서 슈퍼갑인 국회와 행정부를 설득하거나 사안마다 대립각을 세우는 법무부와 힘든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며 “일선 판사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고달픈 경험도 많았지만, 사법부 이익에 보탬이 되는 가시적 성과를 올렸을 때 그것이 가장 큰 보상이고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수감생활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할 때에는 울먹이다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재판은 1심만 5년이나 걸려 이례적으로 장기화된 재판으로 꼽힌다. 임 전 차장 재판은 2018년 11월 구속기소된 뒤 1839일 동안 245차례나 열렸다. 재판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고위 법관 출신인 임 전 차장이 검찰 조서와 증거 대부분을 ‘부동의’하거나 법관 기피신청을 내는 등 재판 지연작전을 펴온 탓이다. 사법연감을 보면, 2022년 기준 구속 피고인의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122.9일이다.
‘사법농단’이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사법부 행정 업무를 맡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게 된 이탄희 당시 판사가, 판사들의 사법 개혁적 학술대회를 저지하라는 업무 지시를 거부하면서 ‘판사 뒷조사 문건’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세 차례의 법원 내부 진상조사(2017년 4월, 2018년 1월·5월)가 진행됐고 검찰 수사로 2018년 11월~2019년 3월 전·현직 판사 1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지난 9월 사법행정권을 불법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징역 7년을 구형한 바 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과 4년을 구형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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