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 처리를 놓고 고심해오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법원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고위 법관들 주장 대신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소장 법관들의 의견을 채택한 셈이다. 수사 협조라는 소극적 방식을 택하긴 했으나 지난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발표 이후 비등한 비판 여론을 수렴해 진상 규명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은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입장문을 내는 등 사실상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적인 불신을 아랑곳 않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이 특별수사팀을 꾸림으로써 다음주부터 사법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법원행정처 수뇌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예상된다. 법원과 검찰 모두 조직이기주의나 편견을 떨쳐내고 어떤 성역도 없이 법과 원칙에 따른 접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재판 거래와 법관 사찰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발견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고위 법관들은 재판 거래 의혹이 근거 없다고 주장했으나, ‘흔적’ 이상의 ‘근거’가 한둘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려 했다는 16개 판결뿐 아니라 ‘청와대와 물밑에서 조율’해왔다는 양승태 대법원 스스로의 고백은 분명하게 문건으로 남아 있다. 이런 판결들 때문에 케이티엑스(KTX) 해고 승무원은 결국 목숨을 잃었고, 과거사 피해자들은 배상은커녕 빚더미에 올라야 했다.
재판 거래가 확인된 것은 아니나 김명수 대법원장 말처럼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덕목에 비춰 의혹만으로도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분명하다. 문건 작성 경위와 이후의 실행 여부에 대해 전직 대법원장을 포함해 성역 없는 조사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대법관 일동 명의로 ‘대법원 판결에 어떤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며 1월에 이어 또다시 무고함을 강조하는 입장문을 낸 건 어처구니가 없다.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대법관들이 자기 사건 재판하듯이 ‘견해 일치’ 운운하고, 해당 판결에 관여하지도 않은 6명의 대법관까지 이에 동참한 건 현 대법원마저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황당한 일이다. 이런 예단을 가진 대법관들은 이 사건을 공정하게 재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수사 방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즉각 취소해야 마땅하다.
법원행정처장의 지시 아래 행정처 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동료들을 사찰하고 조직 와해를 시도한 것은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그동안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고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해 재판 중이다. 전직 대법원장·대법관이라고 성역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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