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을 군부독재 정권과 싸우며 진보 가치 확산에 애썼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많은 국민의 가슴을 헤집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무엇이 진보정치의 상징이자 대중화의 기수였던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지, 그 길밖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지,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이 지금과 같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데엔 노회찬 의원의 공이 매우 컸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10%를 뛰어넘는 지지율로, 원내 112석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지지세가 확산했다. 물론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진보의 불모지인 한국 정치권에 겨우 1% 안팎의 지지를 받으며 진보정당의 씨앗을 뿌렸던 과거를 생각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임엔 분명하다.
그 중심엔 항상 노회찬이 있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1997년 대선에서 진보 후보였던 내가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1.19%)로 모두들 실의에 빠졌을 때, 다시 진보정당(민주노동당) 추진 운동을 일으켜 세운 이가 노회찬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노 의원은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뒤, 정치권력뿐 아니라 검찰·대기업과의 싸움을 주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회의원 중 하나였다. 삼성의 ‘떡값’을 받은 검사 7명 이름을 공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건, ‘노회찬 정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그가 갑자기 사라진 상황은 더욱 낯설고 믿기지 않는다.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선 한치의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노 의원이, 자신에게 씌워진 불법 정치자금의 굴레에선 얼마나 몸부림치며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했을지 익히 짐작할 수 있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또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정의당 당원들에게 ‘죄송하다’고 적었다. 그의 깊은 죄책감과 정의당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헤아리는 건 이젠 부질없는 짓이리라. 그러나 그런 노 의원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했던 그를 불법의 사슬로 묶어버린 게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기에, ‘인간 노회찬’을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그보다 훨씬 큰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은 떳떳하게 무죄를 주장하며 여의도를 활보하는 마당에, 선거를 앞두고 그깟 몇천만원 받은 게 뭐가 대수냐고 말하기엔 ‘정치인 노회찬’의 순수함이 가슴 저리다.
노 의원이 숨지기 전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12년간 투쟁해온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노동자들의 복직에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유서엔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국민들께서는) 정의당을 계속 아껴달라”는 말이 담겼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 삶을 바친 노회찬 의원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