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진보정치, 아이콘을 잃다

등록 2018-07-24 05:01수정 2018-07-24 09:54

노회찬 의원 별세

서민·노동자 대변 3선 국회의원
드루킹 불법자금 의혹 수사받아
현실정치 한계 못 벗고 비극
진보 ‘더 높은 도덕성’ 책임 느낀듯
“모든 허물은 제탓, 당은 아껴주길”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62)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오전 9시38분께 노회찬 의원이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현관에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며 “이 아파트 17~18층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48)씨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왔다.

노 의원은 유서를 남겼다. 그는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밝혔다.

각 정당의 논평이 쏟아졌다. 의외로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가장 잘 정돈되어 있다.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 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서 오셨습니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입니다.”

정치인 노회찬의 등장은 화려했다. 2004년 17대 4·15 총선은 비례대표 정당 투표가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후보였던 그는 토론회에서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서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카맣게 타버린다. 이제 불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촌철살인의 시작이다.

17대 총선 개표 막판의 관심사는 ‘10선에 도전한 자민련 비례대표 1번 김종필이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 노회찬이냐’였다. 최종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13.03%, 자민련 2.82%였다. 노회찬이 당선됐고, 낙선한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노회찬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로 당선됐다. 2013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시 성산구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다. 3선 의원으로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았다. 그는 진보 정치의 살아있는 신화요, 아이콘이었다.

정치인이면 누구나 뻔히 알면서도 잘 빠지는 두개의 함정이 있다. 금품 비리와 부적절한 남녀 관계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도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노회찬 의원이 경공모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이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도 선거를 하려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공식 정치자금 이외에 돈이 더 들어간다. 그게 우리나라 정치의 슬픈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자기 돈을 쓰거나, 지인들이 ‘대가성 없다’며 주는 돈을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한 윤영석 의원의 평가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 그러나 경공모처럼 여러 회원이 모아서 준 돈은 반드시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통해야 하고 선관위에도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 정가의 상식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노회찬 의원의 표현대로 ‘어리석은 선택’이요, ‘부끄러운 판단’이다.

진보 정치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노회찬 의원도 마지막까지 이 대목을 걱정했던 것 같다. 유서에는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원들에게 당부하는 대목이 있다. 또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며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자신이 평생 일궈온 진보정당이 한창 잘나가는 상황에서 본인으로 인해 정의당이 피해를 보고 무너질 수 있다는 압박감, 미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또 “완벽성을 추구했던 노 의원이 불법 자금 수수에 대해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은 앞으로 가야 한다’는 유서 내용을 보더라도, 자신이 진보 정당을 위해 노력해왔고, 정의당이 자기로 인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짚었다. 파렴치한 정치인들에 비하면 혐의가 무겁지 않을 수 있지만, 진보정당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도덕성과 청렴성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진보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