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과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이 30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일부 과거사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30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무리한 ‘정권 협조’ 판결에 대한 당연한 시정 조처로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이해관계자가 걸려 있는 긴급조치 피해배상 사건 헌법소원은 받아들이지 않은데다 대법원 판결 자체를 문제삼는 ‘재판 소원’은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절반의 구제’에 그쳤다. 특례입법의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진 셈이다.
헌재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에 대해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배상청구권 침해”라며 일부 위헌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임의로 앞당긴 사건들에 대해선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 의혹 사건’이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권은 일반적인 국가배상 청구권과 다르다며 ‘특별한 기본권’ 개념을 들고나왔다.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진 ‘국가가 국민에게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시효 소멸을 이유로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청구권이 법적 안정성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이례적 논리 전개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재판 소원’을 배제한 현행 헌법재판소법 자체를 정면으로 문제삼지 못한 데 따른 한계도 뚜렷하다. ‘대법원 판결들이 헌재의 위헌 결정에 반하여 긴급조치들을 합헌이라고 한 바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해 1천여명으로 추산되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의 길이 막혔다. 또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도 아무 배상도 받지 못한 뒤 재판 소원을 제기한 정원섭 목사 사건 등은 아예 이날 선고에서 누락됐다.
‘소멸시효’ 사건에 대해 헌재는 ‘법원의 재심 개시에 따라 청구권이 보장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논란의 소지가 있다. 표현은 ‘일부 위헌’이라고 했으나, 대법원이 사실상 ‘한정 위헌’ 결정으로 보고 기존 판결을 바꾸지 않으면 배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재판거래’ 문건 논란으로 사실상 해당 판결들의 신뢰성을 잃은 대법원이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게 맞다. 그럼에도 상당수 ‘정권 협조 판결’로 인한 피해자들은 특별입법을 통해서나 구제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