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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제 식구 감싸는 ‘방탄 법원’에 재판 맡길 수 없다

등록 2018-12-07 17:35수정 2018-12-07 19:12

박병대·고영한 영장기각 사유 ‘황당’
‘임종헌 꼬리자르기’에 암묵적 동의
이젠 특별재판부·법관탄핵 불가피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청구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7일 새벽 모두 기각됐다. 박 전 대법관 영장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수의 증거자료가 수집되어 있고, 현재까지 수사 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고 전 대법관 영장 기각 사유도 비슷하다.

이들과 공범관계로 공소장에 적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기소한 것과 비교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임 전 차장 구속영장은 ‘상당 부분 소명’됐다며 발부했는데, 이번엔 두 전직 대법관 등과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하면 임 전 차장 단독범행이란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모관계에 의문이 있다면서 다수의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건 또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직업·가족관계 등을 종합할 때 구속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목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전직 대통령을 두 사람이나 구속한 판사들이 보기엔 ‘대통령 위에 대법관’이 있는 모양이다. 임 전 차장이 상관에 대한 진술을 꺼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영장 기각은 국민 법감정·법상식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판단이다.

대법원 특별조사단 때부터 제기돼온 ‘임종헌 선에서 꼬리자르기’에 법관사회 전체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방법원을 돌면서 판사들에게 사법농단의 단죄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신 검찰 수사의 불가피성을 사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법원의 시대착오적 분위기를 말해준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두 대법관을 거쳐 대법원장에게 올라가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이 실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영장 기각은 매우 우려스럽다. 서울중앙지법이 영장전담판사를 늘리고 연고 없는 판사들로 형사재판부도 3개나 증설하는 등 공정한 재판을 위한 준비를 해왔으나 모두가 ‘눈가림 쇼’에 불과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사법부는 입법·행정부와 함께 헌법이 정한 3부 가운데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국민 신뢰를 잃으면 존립의 기반을 잃는다. 이번 영장 기각은 국민이 맡겨준 사법권을 조직보호를 위해 악용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 국민이 부여해준 사법권을 떡 주무르듯 남용하는 법원에 사법농단 사건을 계속 맡겨도 되는지 시민사회와 국회가 다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이런 ‘방탄 법원’에 실체적 진실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헌법재판소가 법관 탄핵 심판에 나서야 최소한의 공정성이라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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