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결국 사법발전위 후속 추진단의 초안에서 대폭 후퇴한 사법행정 개혁안을 내놓았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까지 꾸리며 국민들과 함께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밝히고 최근까지 “개혁에 후퇴 없다”고 약속한 데 비춰보면, 결국 법원 내부의 반발에 무릎 꿇은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과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이 실종 위기에 놓인 데 이어 사법행정 개혁마저 흔들리는 데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법원장이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위에 제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한마디로 졸속·땜질 개혁안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법원행정처 대신 신설되는 사법행정회의에 대해 추진단은 의결과 집행권을 포함한 총괄 권한을 가진 기구로 하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김 대법원장은 심의·의결 기구로 격하했다. 회의 구성도 법원 내·외부를 5 대 5로 한다는 추진단 의견 대신 비법관 법원사무처장을 끼워넣어 사실상 6 대 4로 외부 인사를 줄였다. 판사 보직인사에는 비법관 위원들이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사무처의 탈판사화도 명문화하지 않았다. 애초 판사들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을 때부터 우려하던 대로 외부 인사를 들러리 세운 꼴이 됐다. 사법행정회의나 산하 위원회의 운영 등에 관한 규칙 제정의 근거 조항도 없는 상태여서 기존 대법관 회의에 비해 얼마나 실효성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의사 결정과 집행이 분리돼 개혁 취지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정사 이래 최악의 사법농단 사태로 사법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과연 이 정도 법 개정만으로 법원 안팎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사법부 구성원들이 자문해보기 바란다. 과거 이용훈 대법원의 사법개혁은 물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위원회 방안에 비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해놓고 구속영장은 ‘증거 부족’이란 이유로 다시 기각하는 바람에 국민이 부여한 사법권을 조직 보호용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국민적 비난이 들끓는 상황에서 다시 사법행정 개혁마저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수술을 거부하고 잠시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를 처방하는 데 그친 꼴이다. 이제 국회가 나서서 각계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 다시 바로잡는 수밖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