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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양승태 구속, 사법농단 ‘몸통’ 단죄는 사필귀정이다

등록 2019-01-24 07:19수정 2019-01-24 19:07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국 구속됐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원이 뒤늦게나마 사법농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단죄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한다. 양 전 대법원장 개인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사건 추이를 지켜본 국민들로선 사필귀정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의 ‘공모’ 혐의 대신 직접 나서서 움직인 범죄 혐의들을 대폭 포함시킨 것이 영장 발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제노역 손배소송에서 전범기업 쪽 변호사를 직접 만나고 주심 대법관에게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신중 검토를 주문한 데 대해서도 김앤장 내부 문건이나 대법관과 재판연구관 등의 진술까지 확보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전원합의체 회부를 직접 지시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법관 파견을 청탁하도록 하는 등 ‘재판거래’ 전반을 선두에서 지휘한 것도 그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또 자신의 사법정책에 반대하는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헌법재판소의 비밀을 빼오도록 하는 등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볼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 구속 자체가 그가 사법농단의 ‘몸통’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그가 검찰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대법원 앞 담벼락 회견을 강행하면서 오히려 법원 안팎의 반감을 불러온 것도 영장 발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법원 전체의 불신을 초래해놓고도 겸허하게 반성·사과하는 대신 ‘전직 대법원장 예우’를 요구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에는 여론도 매우 부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함께 심사를 받은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두번째 구속영장은 결국 기각됐다.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에 의문이 있다”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 사건에 비추어 동일한 잣대로 심판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법원은 지난 2년간 ‘꼬리 자르기’ 자체 조사에 이어 자료제출 거부와 잇따른 압수수색영장 및 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법과 양심’에 따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의 대원칙에 일부나마 부응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 재판 등 남은 절차에서도 끝까지 공정한 잣대가 적용되기를 기대한다.

직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일부 법원 구성원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치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그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새출발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또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분투해온 이탄희 판사를 비롯한 상당수 법관들의 노력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가 불신받으면 민주주의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사법부 전체가 노력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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