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단체협의회,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발표된 자립형사립고 운영평가 결과를 비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자율형사립고(자사고) 24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에서 11곳이 탈락하자 ‘자사고 풍선효과’를 기정사실화하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강남 8학군 등 이른바 ‘교육특구’에 대한 선호 현상이 커지면서 고교 서열화가 완화되기는커녕 더 심해질 거라는 주장도 보수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공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속내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이런 주장을 펴는 ‘전문가’라는 이들부터가 공교육과 동떨어진 인물들이다. ‘입시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유명 입시 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이다. 부동산 개발업자를 불러 집값 안정 대책이 오히려 집값 급등을 부를 거라고 말하게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연구를 해온 이들의 목소리엔 아예 귀를 막은 듯하다.
그동안 자사고에 쏠렸던 입시 수요 가운데 일부가 ‘교육특구’라고 불리는 몇몇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고교 서열화가 더 심화될 거라는 주장은, 자사고가 없던 시절에 고교 서열화가 지금보다 심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더구나 대입 체제가 수시 중심으로 크게 바뀌었다. 내신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특정 지역의 선호도가 꼭 늘어난다고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 사교육업체 주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시 확대를 노린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이 자율형사립고의 방패 노릇을 하는 모습도 썩 좋게 보이질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전북교육청에 이번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전주 상산고와 관련한 자료를 97건이나 요구했다고 한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대 입학에 매달려온 이 학교를 두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인재를 육성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치권은 특권 교육을 옹호하기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 먼저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교육 정책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가치를 담아야 한다. 특권 교육을 옹호하는 건 특권 사회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자사고 지정 취소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할 거라고 걱정된다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것이 순리다. 지금은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 확대 등 일반고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 마련에 온 힘을 쏟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