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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피해자 죽음 내몬 군 성폭력·2차 가해, 도대체 언제까지

등록 2021-06-01 18:15수정 2021-06-06 17:22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상관들의 회유 압박과 괴롭힘 등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또다시 벌어져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다. 강제 성추행 자체도 심각한 범죄이지만, ‘최고 지휘관과 말단 간부들까지’ 사건을 은폐하고 합의를 종용하면서 2차 가해를 계속했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방부는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한 점 숨김없이 규명하고 가해자와 2차 가해자를 엄단해야 할 것이다. 또 이번 기회에 폐쇄적인 상명하복식 병영문화도 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충남 서산의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중사로 근무하던 피해자는 지난 3월 선임 중사로부터 “야간 근무를 바꿔서라도 저녁 회식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억지로 회식에 불려나갔다가, 돌아오는 차량에서 선임 중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피해자가 신고하자 가해자와 상사들은 “살면서 한번 있을 수 있는 일”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냐”며 합의를 계속 종용하면서 사건 무마를 시도했다고 유족들은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는 부대 전속 요청도 했지만,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부대 상관들은 같은 군인인 피해자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회유를 시도했다고 한다. 불안장애와 불면증 등으로 고통받던 피해자는 옮긴 근무지에서도 ‘문제 인물’로 취급받는 등 괴롭힘이 이어졌다고 한다. 피해자는 혼인신고를 마친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 오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휴대전화에 남긴 채 부대 관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번 사건은 심각한 성추행, 허술한 피해자 보호, 조직적 2차 가해 등 성폭력 사건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피해자와 유족들의 호소를 외면해온 군은 언론 보도 이후 공분이 들끓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1일 ‘군·검·경 합동 수사 태스크포스’를 꾸려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납득할 수 없는 늑장 대응이다. 병영 내 인권 현실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그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될 때마다 국방부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5월 해군 대위가 직속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사회적 파문이 컸다. 그런데도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벌어진 것을 보면, 그동안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군인권센터 부설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한해 동안 상담한 성폭력 사건만 해도 386건에 이른다.

국방부는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은 물론 여론 무마용이 아닌 특단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또 군대에서 성폭력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비상한 각오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병영 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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