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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군 성폭력 은폐 카르텔 깨려면 사회가 나서야

등록 2021-06-03 20:18수정 2021-06-06 17:24

조직적 공모·부실 수사에 들끓는 분노
군에만 맡겨서는 근본적 해결 어려워
시민감시 통해 ‘폐쇄적 문화’ 바꿔내야
2일 오후 공군 이아무개 중사 성추행 사건 피의자인 장아무개 중사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려고 서울 용산 국방부 군사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구속영장은 이날 밤 발부됐다. 국방부 제공
2일 오후 공군 이아무개 중사 성추행 사건 피의자인 장아무개 중사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려고 서울 용산 국방부 군사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구속영장은 이날 밤 발부됐다. 국방부 제공

성추행 피해만으로도 견디기 힘겨웠을 공군 이아무개 중사를 더욱 막막한 고립감에 빠뜨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군의 조직적 사건 은폐와 부실 수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거대한 장벽 같은 공모의 카르텔 앞에서 이 중사가 느꼈을 한없는 절망과 무력감에 아파하는 마음들을 모아, 우리 사회가 ‘다시는 군대 내 성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폐쇄적 군대 문화를 바꿔나가는 일에 함께해야 할 때다.

이 중사가 지난 3월2일 밤 원치 않는 회식에 억지로 참석했다가 관사로 복귀하던 중 차량에서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81일 동안 군의 대응은 은폐와 부실 수사의 연속이었다. 이 중사가 3월3일 사건을 신고한 직후, 해당 부대 군사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차량에서 “그만해달라. 나를 나중에 어떻게 보려고 그러냐”라는 이 중사의 목소리가 담긴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결정적 물증이 나왔는데도 군사경찰은 보름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 3월17일 처음으로 가해자를 조사했다.

수사가 미뤄지는 동안 이 중사의 상관들은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애초 사건의 발단이 된 회식도 이 중사 상관 지인의 개업을 축하하는 사적 모임이었고 참석 인원이 5명이었다. 코로나 방역지침까지 어기며 이 중사를 억지로 불러내 성추행을 한 사실을 덮으려고 상관들은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며 이 중사를 계속 압박했다. 공군은 이 중사의 죽음을 국방부에 ‘단순 변사’로 보고하는 등 끝까지 진상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만 보지 말고, 최고 상급자까지 포함한 지휘 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히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가해자와 은폐 가담자는 물론, 최고 지휘 책임자까지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은폐하면 군 생활이 끝장난다는 전례를 만들어 군 전체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

‘군 인권 보호관’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는 등 제도 보완도 시급하다. 부대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군인권보호관은 2014년 상습적 집단폭행으로 숨진 ‘윤 일병 사건’ 이후 공론화돼 법까지 만들어졌으나 아직도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동안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될 때마다 대책이 나왔지만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는 군에만 맡겨둘 수 없다.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인식의 큰 변화가 이뤄졌는데도 군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는 걸 이 중사가 죽음을 통해 고발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 이 폐쇄적인 문화를 바꿔야 한다.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 중사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외부 지원이 가능한 상담 핫라인 개설’ 등을 요구했다. 국방부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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