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57) 경기지사의 삶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비주류’다. 가난 탓에 학교 대신 공장을 다녀야 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해선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또 ‘여의도 정치’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정치 근육을 단련시켰다.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 세상을 향해 가겠다”(7월1일 대선출마 선언문)는 다짐은 그가 살아온 길을 투영한다.
“잃을 게 없는 무수저…이름조차 없는 소년공”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그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했다. 이재명 후보캠프 제공
“잃을 게 없는 무수저”라는 이 후보의 말처럼 그의 유년은 가난이 지배했다. 1964년 경북 안동의 빈농에서 5남2녀의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다. 어려웠던 형편 탓에 중학교 대신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공’이 됐다. 이 시절 프레스 기계에 왼쪽 손목 관절이 눌려 비틀어지는 사고를 당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이 지사는 지금도 굽은 팔 때문에 차려 자세가 되지 않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해 공장 간부가 되면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졸지 않으려 책상에 압정을 세워놓고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입학식 때 어머니와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크게 될끼라. 그래서 엄마 억수로 호강시키 줄끼라.(<인간 이재명> 중)”
하지만 대학 입학 뒤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게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시민들이 학살당한 사진을 접하고, 5·18의 진실을 알리던 친구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다. “광주는 구원이었고, 나의 스승이었고, 내 사회의식의 뿌리다.”(<이재명의 굽은 팔> 중)
1989년 사법연수원 졸업식에서 어머니인 고 구호명씨와 기념 촬영을 하는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이재명 후보캠프 제공
그는 1986년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8기로 입소해 노동법학회를 만들었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당시 부산의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사법연수원 특강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성남에 있는 ‘변호사 이재명’의 사무실 책상에는 ‘민생 변론’이라고 적힌 액자가 올려져 있었다. 변호사 이재명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활동을 하며 노동·인권 변론을 주로 맡았고,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멤버로 참여해‘시민활동가 이재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등을 파헤쳤다.
성남의 종합병원 2곳이 동시에 폐업해 지역 의료공백이 우려되자, 그는 시민들과 함께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나선다. 그러나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한 성남시의회는 주민발의안을 47초 만에 부결시켜 버렸다. 이 후보가 사회 운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정치입문을 결심한 계기다.
이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가난의 경험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원, 무상 교복지원 등의 복지정책 시리즈로 이어졌다.
2017년 ‘촛불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기 위해” 출마했다던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율(21.2%)로 3위를 기록했다. 2위인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와 0.3%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2018년 성남시장 3선 대신 경기지사 선거에 도전했고, 56.4% 득표율로 당시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35.5%)에게 압승을 거뒀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은 이 후보의 과감한 추진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경기도 계곡·하천을 사유화했던 불법 시설물 정비나 지난해 코로나 19 당시 현장 지휘에 나선 일, 기본소득·재난지원금 대응 등은 ‘행동하는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여배우 스캔들’, 형수 욕설 등의 구설에 올랐고, ‘사이다 발언’으로 불리는 거침없는 언변은 종종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일 “정책적 안정감은 제가 대한민국 정치인 중 최강이라 자부한다”면서도 “다만 심정적으로 품격이 없고, 말도 거친 거 같고 이건 좀 고쳐야 한다”라고 털어놨다.
중앙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다만 그는 ‘변방의 장수’라는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변방은 오히려 큰 도전을 향한 베이스캠프가 된다. 역사적으로 큰 변화는 언제나 변방에서 싹텄다.”(<이재명은 합니다> 중)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비리 의혹에서 보듯 성남시장 시절 함께 일했던 인물들이 대선 가도에서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