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주도권 누가-
박대통령 “정부에서 개헌안 만들겠다”
국회에는 “여론수렴하고 개헌 범위·내용 논의”
정부주도 개헌 ‘집권연장 악용’ 전례
정세균 의장 “민의 수렴 상향식 개헌해야”
유승민도 “대통령이 주도해선 안돼”
시민단체 “개헌특위에 시민 참여해야”
박대통령 “정부에서 개헌안 만들겠다”
국회에는 “여론수렴하고 개헌 범위·내용 논의”
정부주도 개헌 ‘집권연장 악용’ 전례
정세균 의장 “민의 수렴 상향식 개헌해야”
유승민도 “대통령이 주도해선 안돼”
시민단체 “개헌특위에 시민 참여해야”
‘청와대발 개헌 카드’는 개헌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누가 주도할 것이냐’를 둘러싼 격한 논란을 부르고 있다. 헌법 개정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개헌의 폭과 내용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개헌의 주도권은 결국 ‘헌법 개정안을 누가 만들 것이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안에 개헌을 마무리짓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를 향해선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달라”고 주문했다. 개헌의 주체가 ‘정부’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국회의 역할을 ‘여론 수렴과 사전 논의’ 정도로 한정한 것이다.
개헌이 집권 세력의 권력 연장을 위한 방편으로 악용돼온 우리 헌정사에서 개헌안 대부분은 정부가 만들었다. 정부가 주도하지 않은 경우는 1960년 4·19 직후의 3차 개헌과 1987년 민주화 이후의 9차 개헌뿐이다. 허정 과도정부 아래서 이뤄진 3차 개헌은 국회 헌법개정기초위원회가, 대통령 직선제 전환을 골자로 한 1987년 헌법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개헌안을 만들었다. 국회가 개헌을 주도했다는 얘기다.
“정부 내 조직에서 개헌안을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야당은 즉각 “유신헌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국회의 헌법 개정 권한을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국무회의로 가져와 유신헌법을 만들었고, 계엄령 아래 공포 분위기 속에 국민투표를 치러 통과시켰다.
이날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이 보인 반응에서도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반발 기류가 읽힌다. 정 의장은 국회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개헌 논의의 물꼬를 터준 것에 대해 평가한다”면서도 “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과거의 개헌은 모두 실패했다. 이번 개헌은 철저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민과 함께하는 ‘상향식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시민사회와 정치권 의견을 수렴해 개헌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대통령 주도’에 대한 반감은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서도 드러난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해서는 국민이 그 의도에 찬성할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마저 개헌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당면한 경제위기, 안보위기 극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등한시한다면 이는 국민과 국가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임기말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빠져달라”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1987년 개헌특위 구성에 앞서 개헌의 방향과 폭을 사실상 결정한 ‘여야 8인 정치회담’ 방식의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선 정치회담 방식의 사전합의는 불가능하다. 당시는 정치 지도자 몇 사람의 합의에 의해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헌안의 골격을)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개헌 논의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온 시민단체들은 개헌안 마련에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국회 개헌특위에 시민 대표가 참여해 개헌안 준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대표인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개헌은 대통령이 주도해서도, 국회의원들만 주도해서도 곤란하다. 국회 개헌특위 설치와 병행해 국회 바깥에 시민들이 주도하는 개헌추진 기구를 만들어 국회 특위와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국회 개헌특위에 전문가와 대표성을 갖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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