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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문재인 “정권연장용 제2유신 안돼” 안철수 “선거구제 개편 먼저”

등록 2016-10-24 22:33수정 2016-10-24 22:40

대선 14개월 앞 정국 격랑속으로…
문 ‘청와대발 개헌’에 강한 불만
안 “다당제 터닦고 개헌 넘어가야”
박원순 “국민 살아야 개헌도 있다”
김무성 “범국민개헌특위 꾸려 내년 4월 투표”
유승민 “개헌 주체는 대통령 아닌 국민·국회”
김부겸 “국회에 특위 만들어 토론 들어가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의 방아쇠를 당기면서, 정치권은 때이른 격랑에 휘말리게 됐다.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1년2개월가량 시간이 남아있지만 개헌론과 ‘제3지대론’이 연동되면서 대선에 다가가는 여야 대선주자들의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세워 이원집정부제식 권력분점을 노리고 있는 새누리당 내 친박계(친박근혜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여당의 ‘반기문 대세론’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세론’ 사이에서 정치적 공간을 모색하던 이들도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3지대(손학규·정의화) 또는 ‘비패권지대’(김종인)를 적극 주장해온 정치인들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주자들은 대체로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박 대통령의 국면전환 카드라는 의심과 함께 ‘청와대발 개헌론’에 뛰어들었다가 자칫 여당 좋은 일만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아쇠는 당겨졌다. ‘정략적 꼼수’든 ‘국민의 명령’이든, 눈앞에 놓인 개헌 정국에서 여의도의 대선 시계는 숨가쁘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갑자기 날아든 ‘청와대발 개헌 카드’에 야권 대선 주자들 대부분이 마뜩잖은 분위기지만, 가장 강경한 반응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입장자료’를 내 “박근혜표 개헌은 안 된다. 정권 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이라도 만들자는 것이냐”며 강한 반대 뜻을 밝혔다. 그는 “‘개헌은 블랙홀이고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고 하더니 그새 경제가 좋아지기라도 했느냐.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 참 느닷없다”고도 말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문 전 대표는 적극적 개헌론자는 아니지만 2012년 대선 때부터 비교적 일관되게 ‘4년 중임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을 주장해왔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선 “개헌이 필요하다면 후보들이 대선 공약으로 내고 국민 지지를 받은 뒤 차기 정부 초반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개헌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주자인 그가 자칫 ‘2년3개월짜리’ 대통령을 맡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성사될 경우 제7공화국의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려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21대 총선이 있는 2020년까지로 제한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치 개혁과 권력 분점을 주장해온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임기 마지막 해에 개헌을 하겠다는데 최순실·우병우 이런 일들을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그런 우려가 든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모든 개헌론자들이 바라는 건 분권형 개헌으로, 한 사람이나 한 세력에 집중된 권력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양당 체제에 극도로 유리한 선거 체제는 그대로 두고 개헌을 하는 건 양당이 나눠먹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먼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다당제가 가능하게 먼저 만들어 둔 다음에 개헌으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라고 못박았다.

‘분권형 개헌’을 주장해온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 눈에는 최순실과 정유라밖에 안 보이는지? 재집권 생각 밖에 없는지?”라고 반문한 뒤 “국민이 살아야 개헌도 있고, 정치도 있습니다”라고 일침을 놨다.

정치권에선 앞으로 개헌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문 전 대표를 각 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포위하는 구도로 정세가 흐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발 개헌론에는 여러 뇌관이 숨어 있다”며 “(개헌 대 반개헌의 구도가 짜이면서) 개헌의 범위·방식·시기 등을 놓고 자칫 다수 개헌론자들이 문 전 대표를 고립시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박근혜 대통령의 24일 제안으로 개헌 논의의 물꼬가 트인 것을 환영했다. 그러나 개헌 논의를 누가 주도할 것인지와 구체적인 내용 등 각론을 두고 온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정작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격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장 ‘격한’ 환영을 표한 것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큰 결단에 환영과 존경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와 행정부가 별도로 개헌을 논의해서는 임기 내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오히려 논란을 키울 수 있다”며 “여야와 행정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 구성을 긴급하게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개헌을 하게 되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시기적으로) 가장 좋다”며 “그때까지 개헌 일정을 맞추기 위해 주체들이 범국민 특별위원회에 모여 같이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정계복귀와 함께 개헌을 화두로 던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개헌은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라며 반겼다. 손 전 대표는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을 바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권력구조를 포함해 정치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손 전 대표 쪽 관계자가 전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개헌 논의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가시’를 담았다. 유 의원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이라는 평소 지론을 강조하면서도, 그 주체가 대통령이 아닌 “국민과 국회”여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유 의원은 개헌 시기 등에 대해선 입장 표명을 유보하며 “앞으로 개헌 논의를 주시하면서 입장을 적극 밝히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반응도 유 의원과 비슷했다. 김 의원은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역시 “임기 말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모양새는 정치적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진지한 토론을 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다”라면서 “국회 내에 ‘개헌 특위’를 만들어 구체적 내용을 놓고 각자 입장을 내고 토론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일단’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개헌은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중차대한 과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헌 추진 참여는 일단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그러나 “임기 내로 시한을 정해놓고 단지 유리한 권력 구조를 밀어붙이다 국론 분열만 초래하는 정국을 조성할 경우 역사에 또다른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엄지원 송경화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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