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한겨레>와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전날인 24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추진’ 선언이 오히려 개헌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만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 다수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런 발표를 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현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고, 추진하더라도 정부가 아닌 국회가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선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 자체가 줄었다. ‘박 대통령의 개헌 필요성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32.8%(매우 공감 13.4%, 대체로 공감 19.4%)에 불과하고,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5.9%에 달했다. 지난 7월 <한겨레>와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67%가 개헌에 찬성하고, 반대는 20.0%였다.
부정적 답변이 늘어난 배경에는 박 대통령이 왜 이 시기에 개헌을 추진할까 하는 의심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이 개헌 추진의 적기라는 박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3.4%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고, 공감한다는 답변은 28.2%에 그쳤다. 반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어서 진정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66.7%(매우 공감 43.3%, 대체로 공감 23.4%)가 공감한다고 응답했고, 24.5%만이 공감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에서조차 응답자들의 66.7%가 진정성이 없다는 주장에 공감했고, 23.4%만이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정부에 개헌 추진기구를 만들어 임기 안에 끝내겠다”며 자신이 개헌을 주도할 뜻을 분명히 한 바 있지만, 실제 민심이 원하는 방향은 다르게 나타났다. ‘개헌 논의를 누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9%는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답했고,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고 보는 이들은 13.8%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개헌에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인 셈이다. ‘개헌을 추진한다면 언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도 ‘박 대통령 임기 안 마무리’라고 답한 응답자는 25.4%뿐이었다. 반면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공약을 내걸고 다음 정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자는 60.2%로 두 배 이상 많았다.
개헌의 핵심 사안으로 꼽히는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도가 43.2%로 가장 높았다. 이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18.6%), 총리가 국내 행정을 맡고 외교·국방은 대통령이 맡는 이원집정부제(18.4%),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9.2%)가 각각 뒤를 이었다. 여야 정치권에서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가 주로 거론되는 것과 대조된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선·무선 휴대전화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면접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17%다. 2016년 8월 행정자치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를 기준으로 지역별·성별·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다.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다. 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석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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