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헌 논의>
6월 항쟁 뒤 오류 반복 말아야
야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한 논의를
대선후보들 로드맵 공동선언 필요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기본권 경제민주화 논의해야
6월 항쟁 뒤 오류 반복 말아야
야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한 논의를
대선후보들 로드맵 공동선언 필요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기본권 경제민주화 논의해야
최근 정치권의 개헌 논쟁은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이 적극성을 띠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과거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야권은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거나 신중론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국정농단 사태로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이 개헌을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개헌 이슈를 둘러싸고 형성된 전선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생각도 큰 틀에선 다르지 않다. 촛불정국에서 분출된 사회적 요구가 오직 개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개헌 만능론’은 경계하면서도 ‘보수세력의 정략’과 임박한 대선 일정 등을 빌미로 ‘개헌 논의’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헌 역시 구체제 청산을 위한 유력한 제도개혁 방안의 하나인 만큼 법률이나 정책, 사회적 관행에 대한 개혁 논의와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학계의 대표적 개헌론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개헌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 보수세력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1987년에도 6월항쟁 직후 바로 개헌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광장의 열기가 식어버리고 과거 청산의 기회를 놓쳤다. 똑같은 오류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오동석 아주대 교수(헌법학)도 “친박·비박을 막론하고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개헌은 광장에서 분출된 국민의 요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개헌론에 매몰되기보다 헌법·법률·정책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회개혁의 방향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맞지만, 이를 이유로 개헌을 서둘러 추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대선 전 개헌’ 같은 무리한 시도는 피하는 게 맞지만, 야권 역시 개헌 일정표를 확실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공통된 주문이었다. 박명림 교수는 “개헌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보여주면서, 대선 이후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 분명한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이 개헌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보수세력과 언론으로부터 ‘기득권 세력’이란 공세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 사이에 ‘개헌의 구체적 로드맵’에 대한 합의와 선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는 “일단 대통령 권력이란 ‘절대반지’를 손에 넣으면 대선 전의 개헌 약속은 언제든 공수표가 될 수 있다. 대선 경선과 본선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합의와 선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후보 시절 개헌 추진을 공약했다가 당선 뒤 현실적 여건을 이유로 공약을 파기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당선되면 개헌하겠다’는 추상적 선언을 넘어, ‘언제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고 국민투표는 어느 시점에 하겠다’는 수준의 구체적 일정을 후보자들끼리 합의해 공표해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개헌 논의를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 한정해선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이해관계가 다르고 너무 폭발력이 큰 문제가 처음부터 논의되면 합의가 쉽지 않다.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기본권 문제 등도 함께 논의하되, 사회 전반이 공감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와 관련된 헌법 조항부터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세영 송경화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