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의원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노사·여야간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정의당에서 핵심협약 취지를 반영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내놨다. 지난해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왔으나 경영계가 ‘몽니’를 부리는 탓에 논의 테이블에는 파업시 대체노동 허용·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 과도한 주장까지 난립하고 있다.
18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노동기준에 철저히 부합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개정안은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단체교섭 보장 △노동조합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 폐지 등 실질적인 ‘노동조합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가운데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협약은 ‘결사의 자유’(87·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105호)로 총 4개다. 이 가운데 ‘결사의 자유’ 협약은 노동조합 활동을 제약하는 현행 노동조합법의 개정을 필요로 해서 노사·여야간 마찰이 심하다. 지난해부터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안 개정방향을 논의해왔으나 노사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고 공익위원 권고 수준의 논의 경과만 발표됐다. 노동계는 경사노위가 노동기본권을 노사간 ‘주고받기’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거센 비판을 이어왔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경사노위 논의와 관계없이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파업시 대체노동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내용 등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에)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인 (부당노동행위 때) 사업주 형사처벌 폐지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사노위가 노동계 이익만 대변한다”고 말하며 경사노위 논의를 부정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이를 “핵심협약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을 늘어놔 핵심협약 비준 논의의 판을 깨려는 경영계와 보수야당의 수작”이라고 보고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이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양대노총은 여당안이라고 볼 수 있는 한 의원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핵심협약에 비추어 미흡하다는 취지의 국제노동기구 ‘실무 조언’ 서한을 공개했다. 지난달 경사노위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로스쿨)는 노사에 적극적인 협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미 단결권 관련 공익위원안은 국제노동기준 위반마저 감수하고 경영계 요구를 충분히 반영했기 때문에 노동계 불만이 큰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이정미 의원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일종의 촉구성 발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저는 국제노동기구 협약과 권고대로 해고자·실업자·특수고용노동자 등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이미 두차례 발의한 바 있다”며 “오늘 개정안을 한번 더 발의한 이유는 핵심협약 비준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 들어 노동조합법 개정심사는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비준 절차에 돌입하고 국회는 노동조합법 전면 개정 심사에 나서 핵심협약 비준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 관심과 기대가 큰 사안이다. 이미 국제노동기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는 6월 창립 100주년 기념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아달라고 요청 서신을 보냈다. 노동계는 문 대통령이 국제노동기구 총회 단상에 오르려면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조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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