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 봉쇄에 ‘경호권’ 발동했지만…
육탄저지 나선 한국당 의원들
국회 곳곳 몸싸움·고성 얼룩져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경호권발동으로 진입한 국회 경위들을 밀어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5일 밤 국회에선 선거제 개혁·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 등 개혁입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하며 회의장을 막아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로 인해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자정이 넘도록 열리지 못하면서, 결국 목표했던 25일 패스트트랙 지정은 무산됐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국회 경호권발동으로 진입한 국회 경위들과 자유한국당 의원, 보좌진들과 몸싸움이 벌어진 뒤, 헌법수호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여야 4당은 이날 오후 6시45분께 사개특위와 정개특위 개회에 앞서 공수처 설치 및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제출하려 했으나,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청 7층에 있는 의안과를 점거·봉쇄하며 난항에 부닥쳤다. 이 소식을 들은 문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저녁 7시 40분께 국회 경호과가 나섰지만,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들은 의안과 앞에서 두줄 세줄로 ‘인간띠’를 짜고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현수막을 말아 띠처럼 둘러 문 앞을 봉쇄한 채, “헌법 수호” “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쳤다. 거센 충돌 끝에 국회 경호과 직원들이 물러서자, 한국당 관계자들은 “막았다”를 외치며 환호했다. 복도에서는 한국당 의원들이 부르는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25일 밤12시께, 국회 정개특위 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인간띠’를 짜고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 등의 회의장 진입을 봉쇄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7층 의안과 뿐 아니라, 사개특위 및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소집될 것으로 예상되는 1층, 2층, 4층, 6층을 비롯한 여러 곳의 회의실 앞도 조를 나눠 한국당 의원들이 막아섰다. 일부 의원들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책장 등을 문 앞에 괴고 진입을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들과 자유한국당 의원들 간 입씨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밤 9시30분 정개특위가 소집된 국회 행안위 회의실(445호)을 찾은 정개특위 위원장심상정 의원은 문 앞을 막아선 나경원 원내대표와 30여분 간 설전을 벌이며 대치했다. 심 의원은 회의장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고, 나경원 의원이 국회법을 지키라며 저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고성과 야유가 오갔다. 심 의원은 나 원내대표를 향해 “패스트트랙은 한국당이 만든 법”이라며 “보좌진을 앞에 세우고 뭐하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민주당 2중대는 물러가라”고 외치며 맞섰다.
사개특위 회의장 앞에선 진입을 시도하던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의 휠체어가 뒤로 밀리는 등 위험한 상황도 벌어졌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 등도 이날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사개특위 저지에 합류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이 문을 지나려면 도끼를 가져와야 할 것” “공수처법 발동해서 (우리를) 다 잡아넣어라” 등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맞섰다. 정개특위·사개특위 위원들의 진입 시도가 있을 때마다 ‘지원요청’을 받은 곳으로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뛰어가는 등, 밤늦도록 회의장 이곳 저곳에서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밤 11시40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불법폭력 회의방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를 열고 자유한국당의 회의장 봉쇄로 국회의 정상적인 법안 상정 절차가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선진화법은 더 이상 동물국회를 볼 수 없다고 해서 국민들의 요구로 만들어졌는데, 자유한국당이 산산이 짓밟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의안과 사무실을 자유한국당 당직자들이 점거하고 직원들과 언론인들도 그 방에 갇혀 있다”며 “불법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규탄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위원들은 다시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완강한 한국당 의원들의 저항에 맞부딪혔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법안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상정하려는 것”이라며 한국당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끝내 25일 자정 이전 회의장 진입에 실패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민경욱·장제원·이주영·김태흠·이장우·정진석 의원 등 회의장 진입을 방해한 의원과 당직자들을 채증해 국회법 165조, 166조를 어긴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 선진화법이 발효된 뒤 위원장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회의방해시) 5년 이하 징역, 최하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인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보좌진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며 비판했다.
정유경 김원철 서영지 김미나 기자 edge@hani.co.kr
25일 밤 12시께, 사개특위가 예정된 국회 220호 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인간띠’를 짜고 사개특위 위원들의 진입을 봉쇄하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