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언론 좌파에 장악” 발언 뒤 미디어특위 대응 나서
여성 당원 ‘엉덩이춤 논란’ 보도 관련 ‘한겨레’ 제소
‘강원 산불’ 문 대통령 행적 의혹 제기 고발 당한 누리꾼 74명 법률지원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잇따른 당 안팎의 설화와 돌출 악재에 시달려온 자유한국당이 ‘총선을 앞둔 실시간 이슈 대응’을 위해 당 미디어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를 발족했다. 최근 여성 당원 행사의 ‘엉덩이 퍼포먼스’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황교안 대표가 “언론이 좌파에 장악돼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 직후 출범한 기구여서 내부 구성과 활동 방향이 주목된다.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도 지난달 13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민주노총에 언론이 다 장악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미디어특위의 초반 행보를 보면, 비슷한 취지의 보도를 한 수많은 언론 중에 평소 한국당에 비판적인 언론만 선별해 법적 대응을 하는 등 ‘언론 재갈 물리기 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디어특위가 극우보수 성향의 유튜버들이 ‘가짜뉴스’ 유포 혐의로 대거 고소·고발을 당한 사건에 나서 법률 지원을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은 지난 1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미디어특위 구성안을 의결하고, 미디어특위 위원장에 박성중 의원과 길환영 전 한국방송(KBS) 사장을 공동 임명했다. 길 전 사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 통제 의혹’에 휘말리며 2014년 6월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해임됐던 인물이다.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이른바 ‘사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게 논란이 돼 해고된 전 문화방송 아나운서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역 의원 가운데는 한국방송 기자 출신인 민경욱 의원을 비롯해 당 법률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최교일 의원, 전략기획부총장인 추경호 의원 등이 참여한다. 미디어특위 산하에 별도의 법률자문단도 꾸렸다.
미디어특위는 발족 당일인 1일 첫 활동으로 여성 당원들의 ‘엉덩이춤 논란’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를 제소 대상으로 삼았다. 미디어특위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 “첫 행보로서 자유한국당 여성 당원들이 속옷 노출 퍼포먼스를 하고 이를 황 대표께서 격려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관련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디어특위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또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문제의 퍼포먼스와 황 대표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는데 왜 <한겨레>만 ‘콕 찍어’ 제소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한국당이 발끈한 ‘황 대표의 격려’ 대목도 <한겨레>는 “행사에 참석한 황 대표는 이날 장기자랑 상위권 수상자들을 추후 당 행사에 초청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미디어특위가 오히려 <한겨레> 보도 내용을 왜곡해 ‘황 대표가 격려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허위사실을 주장한 셈이다.
이와 함께 미디어특위는 지난 4월 강원도 산불 당일 문재인 대통령 행적 의혹을 제기한 혐의로 고발당한 누리꾼 74명에 대해선 당 차원의 법률 지원에 나섰다. 앞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강원도 산불 발생일에 언론사 사장과 술을 마셨다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최초 유포된 곳이 유튜브 방송인 ‘진성호 방송’과 ‘신의 한수’라고 지목한 바 있다. 미디어특위는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등이 고발한 누리꾼을 ‘가짜뉴스를 유포한 네티즌’이라고 표현한 <서울신문>과 <강원도민일보>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2일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한국당과 미디어특위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 “당의 부적절한 행위를 좌파 언론 탓으로 떠넘겼던 황교안 대표 발언의 업그레이드 버전”(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임영호 부산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정당이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에 대한 보도로 치명타를 입었을 수 있으나, 이는 정당이 감수해야 하는 사안이다. 자신들이 잘못을 해놓고 정치적 기구를 만들어 법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은 언론에 대한 위협 효과를 노린 언론자유 침해”라고 짚었다. 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도 “언론이 좌파에 장악되었다는 발언도 국민과 시민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고발당한 유튜버 법률 지원은) 한국당이 그들을 자신의 이중대처럼 선전선동 도구로 여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장나래 정유경 기자, 문현숙 선임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