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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고은영 녹색당 선대본부장 “정치세력 구분선에 기후위기 집어넣을 것”

등록 2020-02-13 05:00수정 2020-02-13 10:42

창당 8년 만에 첫 의원 배출 희망
“미세먼지 마스크 써야 된다가 아닌
마스크 없이도 사는 세상 말해야”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녹색당은 오는 3월로 창당 8주년이 되지만 여전히 ‘이색정당’으로 불린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시도로 도전했지만 아직 녹색 배지를 단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탓이다. 준연동형비례제 도입으로 작은 정당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4·15 총선에서는 어떨까? 총선 준비에 한창인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나 “이제 때가 왔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녹색당에게 선거제 개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회가 아니다. 오랜 세월 선거제 개혁을 위해 애써온 녹색당만의 역사가 있다. 고 본부장은 “녹색당은 원외 정당 가운데 선거제 개혁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며 “총선에서 정당득표 2% 미만인 정당을 해산하는 정당법을 헌법소원으로 무효화하는 등 녹색당이 만들어온 판”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녹색당이 번번이 뛰어넘지 못한 ‘봉쇄조항 3%’의 벽은 여전하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분명하다. 녹색당은 “지금은 시대가 전환하는 국면”이라고 본다. 고 본부장은 “그간 정치권이 다루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터져 나오며 시민 앞에 꺼내어 보이는 과정”이라며 “녹색당은 기후정의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안경”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녹색당은 지역구 후보자 없이 비례대표 후보만 낼 예정이지만 ‘풀뿌리 정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고 본부장은 “모든 당이 지역 당협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걸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녹색당은 의원 하나 없이도 제주 제2공항, 경남 마산의 인공섬 문제 등 지역 현안에 개입하며 정치세력화를 해내고 있다”며 “그게 진짜 민생이고, 진짜 정치”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21대 총선에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균열을 내는 것을 꿈꾼다. 그동안 한국 정치세력을 나눠온 선이 경제와 분단뿐이었다면 여기에 기후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고 본부장은 “청년들에게 기후위기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중요한 아젠다”라며 “녹색당은 기후정치라는 시선으로 남북관계, 동아시아 평화, 에너지, 산업 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시민단체 아니냐’는 말을 들어온 만큼 이번엔 ‘녹색당의 정치’를 보여주려는 의지도 강하다. 고 본부장은 “시민들은 ‘마스크를 써야 안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정당을 기다리고 있다”며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치적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녹색당의 정치”라고 말했다.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래는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과의 일문일답.

녹색당은 그동안 한 번도 국회의원을 배출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가능할까?

“‘과연 녹색당이 봉쇄조항 3%를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외부의 기대, 시대적 열망을 느끼고 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제주와 서울에서 녹색 바람이 불었다. 제주녹색당 정당득표율이 4.87%였다. 지방의회 봉쇄조항인 5%를 넘지는 못했지만 고작 0.13% 차이다. 때가 왔다. 녹색당이 빛을 볼 때가.”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됐지만 봉쇄조항 3%의 벽은 여전하다. 선거제 개혁이 원외정당에게 열어준 기회란 어떤 것인가?

“지금은 시대가 전환하는 국면인 것 같다. 요즘 출연하는 정당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다뤄지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터져 나오며 시민들에게 다 꺼내어 보여지는 과정이다. 그중에서 녹색당은 기후정의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안경인 셈이다.

녹색당은 원외정당 가운데 이번 선거제 개혁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녹색당이 정당정치를 가능하게 만들어온 판이 있다.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2% 미만인 정당을 해산토록 했던 정당법을 헌법소원으로 무효화한 것 등이 우리의 성과다. 이제 그 과실을 인정받고 싶다.”

지난 분투의 역사를 통해 녹색당이 얻은 교훈이 있다면?

“지역의 중요성이다. 모든 당에 지역 당원모임이나 지역 당협은 다 있다. 하지만 소통 체계, 의사결정 등에서 지역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는 당은 거의 없다. 녹색당은 지역 연합정당이지만 다른 당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이걸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선거대책본부는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근에 경남에 갔는데 마산에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건설된 인공섬에 대해서 당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보면 제주 제2공항과 비슷하다. 비정상적인 토건 경쟁이 얼마나 시민들의 삶을 앙상하게 만드는지 지역마다 다니면서 목도하고 있다.”

녹색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데 지역 현안에 다가가기 어렵지 않나?

“비례대표는 전국대표인데도 수도권 위주로만 활동해온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다. 수도권만 벗어나도 비례대표가 자기를 대표한다고 생각 못 하는 시민들이 많다. 기성정당이 직능단체 줄세우기식으로 비례대표를 마케팅 도구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례대표는 전국적인 판에서 정당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정당이 추구하는 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지역 시민의 요구를 수렴하는 방식의 정치도 가능하다. 이미 녹색당은 열심히 지역 현안에 개입하고 있다. 의원 하나 없이도 시민과 소통하고 정치세력화를 해낸다. 그게 진짜 민생이고 진짜 정치다.”

성토만으로는 기성 정치의 틀을 깰 수 없다. 녹색당의 전략은 무엇인가?

“기성정치인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기후변화를 의제와 해서 더 많은 대중에게 지지를 받아야 한다. 기성정치인들은 2050년의 세계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때를 살아야 하는 청년들에게 기후위기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중요한 아젠다다.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정치적 균열은 경제와 분단, 둘 뿐이다. 두 가지의 균열로 사회를 바라보는 정치적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녹색당은 기후정치라는 시선으로 남북관계, 동아시아 평화, 에너지, 산업 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건 환경이라는 단일 의제와는 다르다. 예컨대 녹색당은 평화 이슈의 다른 측면을 보고 있다.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식량 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우리가 아는 평야 지대는 앞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어져 식량 자급률이 20% 밑으로 내려간다. 북한은 상하수도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서 이상 기후로 슈퍼태풍 한번 맞으면 몇만 명 씩 사망한다. 우리도 북한도 생존하려면 당연히 통일이 필요하다. 이런 게 미래 세대의 감각이다.”

녹색당의 총선 1호 공약은 무엇인가?

“기후위기 시대에 맞서는 그린뉴딜 정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시민들에게 얼른 와 닿지는 않는다. 기후정치라는 시선으로 사회 전반을 개편하기 위해 전선을 넓히는 거다. 도시계획, 에너지, 산업 등을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떻게 재편할지 보여주는 커다란 정책 패키지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교육과 직장을 근거리에 두고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자주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향이다.

최근에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수도권 3기 신도시에 신혼부부와 청년을 위한 주택 1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그런 공약은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서 지옥철을 타게 하는 한계, 토건 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두고 주거복지라는 양념을 뿌려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굉장히 위선적인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의 부재가 나타난 결과고 기성 정치의 한계다.”

녹색당 후보들은 상당수가 청년이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국회와는 사뭇 다른데, 비결이 있나?

“녹색당에는 청년 정치인을 세력화하고 발굴하는 청소년녹색당과 청년녹색당이라는 당내 중요 기구가 있다. 실제 청소년·청년들에게 의결 권한이 있고 정당 내 투쟁도 있다. 별도 사업예산이 있고 별도의 총회도 한다. 이 안에서 정당인으로서 성장해 정치인이 된다. 저부터도 2012년에 입당해 제주녹색당의 활동당원, 운영위원, 운영위원장을 거쳐 도지사 출마까지 하게 됐다. 8년 동안 녹색당과 함께 성장해온 사람이다.

지난해 출마를 위한 당내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출마를 최종 결심한 분이 4명이다. 지금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많은 분도 이 프로젝트를 수료했다. 밖에서 청년을 데려와 선거 마케팅으로 한번 활용하고 버리는 기성 정치와는 다르다. 이번 총선은 녹색당을 통해 성장한 정치인을 세상 밖으로 꺼내 자랑하는 기회가 될 거다.”

녹색당이 길러낸 후보들 소개 좀 해달라.

“본격 자랑을 해보자면, 우리 후보들은 누구에게 발탁된 사람이 아니라 당내에서 검증받고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총 7명 가운데 5명은 지정 성별 여성이고 1명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다. 또 7명 모두가 존재를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는 정신을 강조하는 에코 페미니스트다.

만 25세로 피선거권이 막 생긴 사회복지사 김혜미 후보는 청년녹색당에서 활동해서 벌써 당내 리더십이 확고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수년째 주도적으로 쥐고 싸워온 성지수 후보도 있다. 저희가 ‘걸어 다니는 성소수자 깃발’이라고 부르는 김기홍 후보는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선거활동을 기획하고 생산할 줄 아는 사람이다.”

녹색당이 주로 ‘이색정당’으로 호명됐지만 ‘정당의 기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맞다. 요즘 다른 정당을 자꾸 비판적으로 꼬집다 보니 제가 정당론자가 되어있더라. 지역당을 튼튼히 하고, 내부에서 정당인을 키워내는 것이 정치의 기본인데 우리나라는 그게 잘 안 되어 있다.

예전에는 정치인의 자격을 묻는 말에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 도민의 마음을 잘 안다’거나 ‘잘 듣는 사람이라 소통 능력이 좋다’는 답을 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총선 국면에서 보석을 고르는 방법은 ‘진짜 정당인 찾기’라는걸 유권자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녹색당을 보고 ‘선명성만 강조하는 시민단체 같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해한다. 하지만 녹색당은 그걸 전략적으로 채택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탓도 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가 일상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서 먼지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마스크를 벗고 싶은 마음도 클 거다. 우린 시민들이 ‘마스크를 써야 안전합니다’가 아니라 마스크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정당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치적인 입장을 발굴하는 것이 정치다. 그걸 녹색당이 하려 한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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