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1동 거리에서 주민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여론조사 말고, 지역 주민들의 내밀한 속마음을 들어볼 방법은 없을까. 지역구 민심은 어딜 가야 가장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을까. <한겨레>는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전체 253개 국회의원 지역구 가운데 국민의 관심이 쏠린 핵심 지역구 5곳을 고르고, 그중에서도 ‘민심 풍향계’로 꼽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행정동을 찾아가기로 했다. 주민센터, 경로당, 전통시장, 아파트단지, 24시간 사우나 앞…. <한겨레>가 골목길 구석구석에서 보고 들은 민심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세번째 지역구는 오랜 ‘보수 표밭’이었으나 표심 변화가 감지되는 인천 연수을이다.
미용실 안 텔레비전 화면에 마침 이 지역 국회의원인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의 얼굴이 비쳤다. “문재인 비판하는 건 좋아. 근데 말을 꼭 저런 식으로 험하게 해야 해?” 손님 머리를 매만지던 미용사 정아무개(60)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내에서 인기를 얻으려고 그러는 것 같아.”
지난 19일 오후 2시쯤 찾은 정씨의 미용실은 인천 연수구 옥련1동에서 10년 넘게 사랑방 구실을 해왔다고 한다. 미용실 단골인 김아무개(62)씨는 선거 때 줄곧 민주당 후보를 찍어왔지만, 이번엔 누굴 찍을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한테 실망했어. 그렇다고 한국당(미래통합당)을 찍을 수는 없으니 이번엔 그냥 투표를 하지 말까 생각 중이야.” 정씨의 타박이 이어졌다. “아유, 무슨 소리야, 자식들 생각해서 투표는 해야지. 민주당도 잘한 것 없으니, 나는 이번에 정의당 이정미한테 기회를 줘보려고.” 정의당 대표를 지낸 이정미 의원은 2017년부터 송도국제도시에 사무소를 열고 지역 표밭을 다지고 있다.
■ 마지막 남은 보수의 땅, 옥련1동
<한겨레>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국 253개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국민의 관심이 쏠린 핵심 선거구 5곳을 고르고, 각각의 선거구 안에서 ‘민심 풍향계’로 꼽힐 만한 동네 1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세번째 순서로 지난 18일부터 ‘인천의 강남’이라 불리며, 보수의 텃밭이었던 연수을 선거구를 찾았다.
연수구는 1995년 남구에서 분리된 뒤 처음 치른 15대 총선(1996년) 이후 줄곧 보수정당 후보를 당선자로 배출했다. 연수구가 처음 갑과 을로 나뉜 2016년 총선에서도 연수갑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를 선택할 때 연수을은 민경욱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44.4% 득표율로 당선시켰다. 하지만 송도국제도시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외지인 이주가 본격화하면서 지역의 표심도 변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가 2012년 이후 전국단위 6차례 선거를 분석해보니, 인천 연수을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지지세 격차가 6.1%포인트로 민주당이 다소 앞섰다. 연수을이 품고 있는 전체 6개 행정동 가운데 1곳은 ‘민주당 지지세가 (매우) 강했던 곳’으로, 4곳은 ‘민주당 지지세가 다소 강했던 곳’으로 분류됐다. 미래통합당의 지지세가 민주당보다 높게 나온 곳은 옥련1동이 유일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치른 19대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표심을 보였을 정도다.
■ “막말·품격없는 정치는 혐오만 부추겨”
연수을에 마지막 남은 보수의 땅, 옥련1동에서도 가장 먼저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는 곳은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능허대초등학교 일대 아파트 단지다.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에서 역대 투표 결과에 연령·성별 등 사회경제적 데이터를 결합해 예측한 ‘총선전략 마이크로지리정보’를 보면, 옥련시장과 맞닿은 상가밀집지역과 능허대초를 둘러싼 아파트 단지에서는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만나본 이 지역 주민들은 너나없이 “품격 없는 정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수차례 ‘막말 논란’을 빚어온 민경욱 통합당 의원을 겨냥한 지적이었다. 옥련시장 근처에 거주하는 김아무개(38)씨도 “딱히 지지정당은 없는데 한국당(미래통합당)만 아니면 될 만한 사람을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다는 대학생 박민수(23)씨도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반대 당(미래통합당)이 싫다. 민주당 후보가 변변치 않다면 정의당 후보를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옥련시장에서 19년째 장사하는 김아무개(67)씨도 “지지층에서 인기를 끌어보려는 막말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정치에 대한 혐오만 부추긴다”고 했다.
27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옥련1동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엔 능허대초등하교와 옥련시장이 맞닿아 있다. 인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경제 안 좋은 게 민주당 탓인가?”
아직 민주당 후보가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민주당에 대한 언급 빈도 자체가 다소 적은 가운데, 민주당 경선 과정을 지켜보고 표심을 정하겠다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상당했다. 민주당에서는 정일영(62)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박소영(44) 변호사가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얼굴 알리기에 나선 상태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인 임병운(54)씨는 “만약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가 된다면 투표소에 나가지 않겠다. 민 의원을 꺾으려면 강한 민주당 후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민주당을 찍어왔다”는 최아무개(57)씨는 “올해도 누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당만 보고 찍을 생각”이다. 최씨는 “경제가 안 좋은 건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고 꼭 민주당 탓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아무리 요즘 어수선하다 해도 한 번 더 민주당이 1당을 해야 서민을 더 생각하는 정책 방향이 정착될 것 같다”고 말했다.
■ 노장년층 파고드는 정권심판론
인천을 대표하는 보수의 텃밭답게 정부·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송도초등학교에서 인천시립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고령 인구가 특히 많이 사는 주거지역으로 옥련1동에서도 가장 보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옥련1동의 65살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13.7%로 연수을 지역구 평균(9.4%)을 훌쩍 넘는다. 이 부근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최아무개(27)씨는 “이 동네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민주당과 정의당 후보가 둘 다 나와 표가 갈리면 민 의원이 또 당선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연수을은 총 거주자(지난 1월 기준) 36만5천여명 가운데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3만4천여명으로 2016년 총선 당시(2만6천여명)보다 8500명 이상 늘었다.
이 지역 보수층 내부에선 최근 법무부-검찰 갈등과 민주당의 ‘임미리 칼럼’ 고발 사태 등을 계기로 강하게 결집하는 양상도 감지됐다. ‘연수 토박이’ 오아무개(77)씨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세력의 분열에 실망해 선거에 불참해왔지만 이번에는 투표소에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정권심판’이 필요한 이유로 조국 사태와 법무부-검찰 갈등 등을 꼽았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은 민 의원의 ‘막말 정치’ 논란마저 뒤덮는 양상이었다. 송도초 인근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임아무개(63)씨는 “막말하는 게 썩 좋아 보이진 않지만, 정치를 치열하게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두둔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도 자기들이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것 같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그냥 대선도 당겨서 대통령도 빨리 바꾸자’고 할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업준비생 김아무개(26)씨는 “조국 사태 때 민주당의 ‘내로남불’이나 최근 민주당이 임미리 교수를 고발한 것이나 내가 볼 때 정말 잘못됐다”며 “민 의원이 좀 더 품격있게 정치를 했으면 좋겠지만, 그가 막말 논란을 빚는다고 내 표가 여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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