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왼쪽 셋째)과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평화인권당 관계자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비례대표용 선거연합 플랫폼인 ‘시민을위하여’와 선거연합 협약을 맺은 뒤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주당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민주화운동 원로 등이 중심이 된 정치개혁연합 대신 ‘친문재인’ 그룹이 주축이 된 ‘시민을위하여’와 비례대표용 선거연합정당을 꾸리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선거연합정당에 합류하려던 녹색당·미래당 등은 민주당의 이런 결정에 “특정 세력이 중심이 된 플랫폼에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연합정당 합류를 논의했던 두 당을 제쳐두고 이름마저 생소한 소수정당과 제휴해 창당 절차에 돌입하면서 연합정당을 추진하며 내걸었던 명분과 가치의 훼손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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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성향 ‘시민을위하여’ 선택 배경은?
민주당은 이날 기본소득당·시대전환·가자환경당·가자평화인권당 등과 함께 비례대표용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위하여’에 참여한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민주당은 “촉박한 비례후보 등록 일정을 감안할 때 창당 등록과 정당교부증을 받은 ‘시민을위하여’와 함께할 때 신속하고 질서 있는 연합정당 추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플랫폼 선택 문제로 참여를 결정하지 못한 녹색당과 미래당에는 이번주까지 문호를 열어놓고, 정치개혁연합과의 플랫폼 통합 가능성도 닫아두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창당과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친문·친조국 성향의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가 주축이 돼 결성한 시민을위하여는 함세웅 신부 등 민주화운동 원로가 중심인 정치개혁연합과 달리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윤호중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정강정책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정치적 공통분모가 있는 정당을 우선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가자환경당은 시민단체인 페트병살리기운동본부가 주도해 지난달 만든 신생정당이다. 가자평화인권당은 2016년 3월 만들어졌지만, 그해 총선 정당득표율은 0.1%에 그쳤다.
또 다른 선거연합 플랫폼인 정치개혁연합과는 내부 주도권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사무총장은 이날 심기준·이훈·신창현·최운열·이규희 의원 등 총선 불출마 의원들과 여의도에서 오찬을 하며 ‘정치개혁연합은 총선 뒤에도 당을 계속 유지하자는 입장이라 사실상 함께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한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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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미래당 반발
녹색당과 미래당은 민주당의 이런 결정을 거세게 비판했다. 고은영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은 “민주당이 긴밀한 소통 없이 소수정당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판을 끌어가는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오태양 미래당 대표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민을위하여는 누가 봐도 민주당의 외곽 조직인데 그쪽이랑 한다고 하면 참여할 정당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중당은 함 신부 등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연합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시민을위하여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선거연합정당의 정당번호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는 현역 의원의 당적을 옮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총선 불출마 의원 중에서는 이규희·신창현 의원이 당을 옮기겠다는 의사를 당 지도부에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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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성소수자 논쟁 있는 정당과는 연합 어려워”
윤 총장이 이날 특정 정당·세력을 연합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논란에 휘말렸다. 윤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희는 이념 문제라든가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 연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념 문제’는 옛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민중당을, ‘성소수자 문제’는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를 비례후보 순번에 배정한 녹색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민중당은 박근혜 정권 시절 ‘종북 시비’에 휘말렸던 이석기 전 의원 석방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녹색당은 비례대표 후보 6번에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배정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윤 총장은 “비례후보 추천은 엄밀히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녹색당은 이날 논평을 내어 “윤 총장의 발언은 김기홍 후보에 대한 ‘거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윤 총장의 사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도 “소수정당이 대변하는 다양한 가치에 의석을 보장해주기 위해 비례연합당을 택했다는 명분은 어디로 갔느냐”고 비판했다.
서영지 이지혜 김원철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