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원들이 29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엔(n)번방 사건 재발방지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형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대 국회 임기를 딱 한달 남겨둔 지난 29일 ‘엔(n)번방 재발방지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시청만 해도 처벌하기로 하는 등 커다란 진전을 이뤘지만 ‘늑장’ 처리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에 통과된 형법·성폭력처벌법·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안 등은 결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특히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의제강간 기준연령’을 13살에서 16살로 상향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내내 법제사법위원회에 잠들어 있던 법안이다. 임기 초였던 2016년 7월 김승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그해 11월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3년5개월이 지난 뒤에야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됐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강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조항도 이번에 신설되었지만, 해당 법안은 지난해 1월부터 발의되어 있었다. 윤상직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을 시작으로 정의당 윤소하,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잇따라 관련 법을 발의해 법사위 문을 두드렸지만 내내 답은 없었다. 그런 사이 지난해 8월 고 구하라씨의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가 구씨에게 “함께 찍은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받은 재판에서 “실제로 유출·제보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참작돼 일부 무죄를 받기도 했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촬영·제작하는 범죄의 법정형을 상향하는 법안은 지난해 3월(윤소하),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했더라도 나중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하는 범죄를 처벌하게 하는 법안은 지난해 10월(진선미),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를 모의하는 행위도 처벌하는 법안은 지난해 10월(서영교·민주당) 각각 발의되었다. 하지만 법사위는 총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초에야 심사에 돌입했다.
상임위원회 심사가 늦어져 21대 국회의 입법과제로 남은 법안도 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죄로 처벌받은 자는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을 제한하고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형벌에 하한을 두는 법안은 아직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온라인사업자에게 불법 성적 촬영물 유통을 막을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방치할 때에는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역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성적 목적을 위한 지속적 괴롭힘(스토킹) 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도 ‘계속심사’로 남았다. 오는 6월 법무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어서 법사위는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곧바로 검토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 신고에 대한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담은 아동·청소년보호법도 폐기될 예정이다. 민주당 소속 송기헌 법사위 간사는 “포상금을 지급하면 오히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검색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여성단체 쪽 의견이 있어서 보류됐다”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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