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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정동영 “2007 대선 시대정신은 양극화 해소와 평화구조”

등록 2006-01-16 19:21수정 2006-01-18 11:07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② 정동영 전 장관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② 정동영 전 장관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② 정동영 전 장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후보가 누가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지율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 박근혜’의 대립구도로 꽉 짜여 있는 한나라당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래도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의원 신분이 아닌 그에게 통일장관 자리는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장관을 하고 있는 동안 ‘대선주자 정동영’의 지지도는 오히려 반토막이 났다.

정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일요일인 15일 밤 9시 서울 매리어트호텔 비지니스센터의 작은 미팅룸에서 이뤄졌다. 그는 이날 낮 충남 지역을 방문했다. 2·18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방을 순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요즘 화가 좀 나 있다. 선두 경쟁을 하고 있는 김근태 의원이 자신을 ‘당권파’로 몰아세우며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팅룸으로 들어선 정 전 장관은 얼굴이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기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를 돕는 양기대, 이재경, 성일권씨 등이 배석했다. <한겨레>에서는 4명이 참석했다. 정치부의 성한용 선임기자, 이태희 기자가 질문을 나눠서 했고, 정재권 차장, 임석규 기자는 마지막에 간단한 보충질문을 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이번 인터뷰는 공격적인 것이 아니니, 편안하고 솔직하게 말을 하기만 하면 된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첫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연설조로 장황하게 나왔다. 지방순회에서 대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식 답변을 하던 ‘관성’ 때문인 것 같았다.

# ‘왜 정동영이냐’고 묻는다면?

앞으론 ‘통합 리더십’ 필요…나는 주관 갖춘 소통 전문가

#‘당권파’라는 비판을 받는데?


항상 분열주의자가 당을 망쳐…민생경제에 에너지 쏟아야

#민주세력 재통합론에 대한 견해?

과거세력-미래세력 한판승부…‘미래로 가는 연대’ 만들 터

-정치적 현안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월2일 개각 이후 일련의 사건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관심사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여당 탈당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을 하고, 그에 따른 처방, 그리고 전망, 세 가지로 나눠서 말씀해 주시지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탈당과는 맥을 달리 합니다. 그 때는 수직적인 권력구조였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치받는 요구에 의해 대통령이 불가피하게 당을 떠나는 경우였습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탈당에 관한 언급은 기본적으로 구조가 과거와 같은 수직구조가 아닌 당과 대통령이 전인미답의 길, 수평적 구조로 짜여진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핵심은 대통령이 당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전에는 아래로부터 치받는 요구에 의해 불가피하게 이뤄졌는데, 지금은 대통령이 당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단임제 대통령으로써 내가 역사와 국민과 대화하고, 내 포부를 실현해 가는 데, 내 철학과 원칙을 실현하는 데, 당은 선거 이익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이것과 같이 갈 경우도 있지만 충돌할 때도 있다. 이러면 당에 부담을 준다. 그러면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자’ 이런 겁니다. 이런 표현을 해보죠. 고슴도치를 상자 안에 같이 두면 피를 흘린다.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하면 더 나을 수 있지 않느냐. 이런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탈당론과 지금의 탈당론은 궤를 달리 합니다. 그것이 구조적 측면입니다. 그리고 현상적 측면은 소통의 문제가 있습니다. 정세균 의장의 입각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워낙 솔직한 어법을 구사하는 분이니까, 깜빡했다고 했단 말이죠. 비서실장과 총리도 깜빡했다고 했습니다. 당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한 것이고, 당에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죠. 거기에서 짚어진 것이 소통입니다.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지난 2년간 7명의 당의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가게나 기업이, 어떤 회사가, 2년 사이 사장이 7번 바뀌는 데 장사가 잘 되겠습니까? 그 회사 안에서 소통이 이뤄지겠습니까? 단골고객과 소통이 안되는 거죠. 단골고객도 다 떠나는 거죠. 그게 소통입니다.

기사 쓰기 편하게 말씀드리자면, 정동영이 당의장되면 탈당 문제는 사라집니다. 이유는 대통령과 정동영 사이에는 소통의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2002년 대선 과정, 경선에서 국민경선 과정, 2002년 선거운동 과정, 참여정부의 출범 과정, 그리고 신당을 창당하는 과정, 그리고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요소보다도 여당이 여당다우려면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없는 여당은 여당이 아닙니다. 그냥 여러 당의 하나죠. 그러면 우리 정치는 극도의 안개 속, 극심한 안개 속, 불안한 상태로 빠집니다. 출렁거립니다. 대통령이 불안해지고 당이 불안해지고 정치가 불안해지고, 민생이 불안해 집니다. 백해무익입니다. 당에도 어떤 이점도 없습니다. 당에도 좋은 점이 없습니다. 대통령에게도 좋은 점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당을 통해 책임정치를 해야 합니다. 여당은 대통령과 책임과 철학을 공유하는 축이 사라집니다. 국민에게도, 당에게도, 대통령에게도 이익이 안되는 백해무익한 상황은 신속히 정리해야 합니다.

지난해 추석 언저리에 사실 대통령, 이해찬 총리와 제가 태릉(골프장)에서 운동(골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끝나고 술 한잔 하면서 두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대통령이 탈당 이야기를 하는 한 열린우리당이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정리된 것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후 만난 의원들에게 대통령의 탈당 이야기는 정리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하나는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요.

이른바 개각 파동에서 탈당 언급이 있었는데 대통령의 권위에 부담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의원들이 문제 제기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총선에서 경선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당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대통령의 인사권한을 대통령의 개각 구상이 발표된 이후에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사전에 협의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기 위해 소통이 사통팔달로 이뤄져야 합니다. 한강 다리가 21개입니다. 당의장과 대통령, 원활한 시스템을 짜서 한강다리가 21개이듯 원활한 소통구조를 짜는 것이 당·정·청 태스크포스가 할 일입니다. 이 시스템을 가지고 2월 전당대회를 마치면 진일보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여당도 진일보한 관계를 짤 것입니다.

-답변을 조금 짧게 해 주시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뭔가 피해의식을 가진 것 아니냐고 당에서는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대통령으로서 당에, 당원으로서 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당에서는 자꾸 당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뭔가 자신들의 책임부터 시작하지 않고, 정부와 대통령에게 먼저 (책임을) 제기하는 것이 심적 부담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대통령 탄핵 상태에서 총선을 치러서 그런 지는 몰라도,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약간 좀 아래로 본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항의하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글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당정 분리는 현직 대통령이 집권여당 총재를 하면서 당을 거수기로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나온 원칙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총재가 아니고, 대통령이 하려고 해도 당이 거수기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정당의 후보로 당선된 사람입니다. 정당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의견까지 당정분리로 지나치게 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총리와 개각 구상을 협의하도록 되어 있고, 총리는 당에서 간 사람이잖아요? 당의 지도자입니다. 그러면 당과 협의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럼 총리와 협의만 하면 됩니까?

=당의 지도자로 한 명이 가 있고, 제도적으로는 그렇죠. 당의장과 평소 소통이 원활하다면, 말하자면, 현직 당의장을 느닷없이 개각에 포함, 입각시켜서 당의 자부심과 긍지에 상처를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환논법이기는 한데.

-소통의 문제입니까?

=거기로 귀결됩니다.

-통일부 장관을 했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지냈고, 국민들이 보기에는 대통령이 많이 배려를 한 분입니다. 앞으로 의장이 되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같이 갑니까, 아니면 독립성을 강화합니까? 노 대통령과 당 소속 다수 의원들의 의견이 다를 경우 어느 쪽을 따를 것입니까?

=대통령께서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싶어하는 국가적인 어젠다가 있습니다. 거기에 집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을 대적하는 국내 정치는 열린우리당이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당과의 여야 관계는 여당이 독립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당정, 정책적 협력 문제는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해야겠죠.

제가 통일부 장관으로, 안보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일할 때,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받았지만, 목표가 같기 때문에, 매일 매주 일어나는 그런 평상 차원의 것은 제가 확신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소소한 것은 일체 상의를 하거나 지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결정적일 때 대통령의 말씀을 듣고 상의를 하고 했습니다. 그런 것 처럼 지향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에, 당이 자신감을 가지고 국내 정치를 요리해도 대통령과 충분히 이심전심으로 교감할 수 있고, 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과 대통령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의 책임도 있지만, 여당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당 내부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냥 저의 짧은 관찰인데, 왜냐하면 아직 당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사불란(多思不亂)’, 그 표현을 썼는데, 먼저 많을 다자, 생각사자. 생각이 많은 것은 오케이, 그러나 야당은 다양성이 장점이지만, 여당은 다양성만 있으면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무책임한 여당이라는 소리가 나오죠. 이 때 바로, 아니 불자, 혼란 란자. 이런 통합성, 일체감이 실종됐습니다. 회사 사장이 그간 일곱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 근로자의 목소리도 다양한데 그런 지도력으로 통합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통합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여당이 여당답지 못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당·청간의 소통 때문에 여당이 여당답지 못한 것이 위기를 자초했다고 봅니다.

-좀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간 당의장이 7번이나 바뀐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2년 동안 우리는 실험정당을 했습니다. 남이 안가 본 길을 정치개혁, 정당 민주화, 민주주의의 개혁이란 이름으로 판을 짰는데요, 새로운 것에는 낯설음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문제 해결력이 못미친 것입니다. 그것을 딛고 한 단계 더 밀고 갈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깨지고 지리멸렬한 것이죠.

지난 2년간 정당개혁의 실험을 했죠. 실험적 정치를 한, 정당 민주주의를 위한 실험적 개혁을 한 기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정리하고, 한 2년쯤 경험했으니 이제는 다양성과 통합성을 기반으로 해서 힘있고 능력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여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집권 후반기의 참여정부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기회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사실상 국민이 준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당을 포함해서 민주세력을 재통합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세력 재통합론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죠. 그리고 가능한지 여부까지 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당의장이 되면 ‘미래로 가기 위한 연대기구’를 만들겠습니다. 미래로 가는 통합론에 입각해 미래로 가는 연대를 만들겠습니다. 과거에 묶인 통합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연대입니다.

2007년 대선구도를 보면, 먼저 한나라당 플러스, 뉴라이트 플러스, 기득권 수구보수 세력이 있구요, 이에 맞서 우리 당을 중심으로 미래세력과 평화세력 그리고 민주개혁세력이 연대해야 합니다. 한판 승부가 될 것입니다. 과거 세력 대 미래 세력의 판이죠.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저는 그 3대 세력의 대연대를 시험해 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고경영자(CEO) 출신, 엔지오·시민사회단체 출신, 노동계 출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열린우리당에 지방선거를 위한 시험대로 모아 그런 틀 속에서 가동해 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우리당이 먼저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중심축이 됩니다. ‘원 오브 뎀’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서 그런 미래로 가는 연대를 끌어갈 힘이 있어야 하기에, 당을 지지율 1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위를 하는 정당은 미래로 가는 연대를 하지 못합니다. 민주당과의 기계적 통합이나 작은 틀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민주당은 평화세력과 민주개혁세력 가운데 어느 범주에 속합니까?

=양쪽에 다 포함됩니다. 민주세력, 평화세력 다 포함됩니다.

-민주노동당은 어떻습니까?

=다 연관이 있죠.

-열린우리당이 침체한 원인 중에는 당내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장관님은 15%까지 기록했다가 지금 5~8%로 낮아졌습니다, 그 원인은 뭡니까?

=개인 연봉은 회사 매출과 주가에 연동되어 있습니다. 당 지지율이 낮은 구조에서 개인 지지율이 올라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이기에 먼저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당을 살려내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반복하겠는데, 당을 살리기 전에는 저의 장래를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지지율 높이기 위한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당을 살리는 데 매진하다보면 저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헌신성, 성실성을 평가해줄 것입니다.

-당내에서 개혁당파라고 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총선 이후 특별한 시기에 장관을 비난하고 공격한 것을 계기로 지지율이 꺾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제가 지지율 분석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웃음) 지지율은 국민들의 목소리입니다. 낮은 지지율을 보면서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 왔습니다.

-지난 11일 출마 기자회견을 하셨는데, 임팩트가 있는 주제가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어게인 4·15’(4·15여, 다시 한번)이라는 구호는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요?

=지금 우리 당의 문제는 패배의식에 있습니다. 자신감 상실입니다. 5월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그런 패배의식입니다. 먼저 목표 제시가 중요했습니다. 지지율 1위를 재탈환하겠다는 것입니다. 패배의식을 버리고 지지율 1위를 재탈환하기 위해서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50만 당원, 144명 국회의원 가슴 밑바닥, 배꼽 밑바닥에 들어 있는 것은 지지율 컴플렉스입니다. 임팩트가 있건 없건 그것보다 더 사활적 중요도가 있는 것은 없다고 본 것이죠.

-김근태 의원 쪽에서 정 장관 쪽을 당권파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당권파라는 표현은 언론에서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미 사라진 표현을 다시 살려내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당을 살려야지 땅속에 묻힌 용어를 살려내는 것은 과거지향적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항상 분열주의자가 당을 망쳤습니다. 분열로 망친 당을 저는 융합으로 살리겠다고 공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열주의자는 변화와 창조를 못합니다. 그래서 분열주의자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권파란, 그러니까 얼마 전에 있던 문희상 체제를 겨냥하는 것 같은데요, 문희상 당의장은 전당대회를 통해 1만3천명 대의원이 선출한 지도부입니다. 1만3천명 대의원들에 모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분열과 분파적 행동은 내부에 대해 겨냥할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의 투쟁에 전환, 투입하는 것이 옳습니다. 양극화 해소, 민생경제 활성화에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당권파가 아닙니다. 2004년부터 당의장으로 일했고 당시에는 지지율이 1위였습니다. 그 뒤로 여섯 분의 당의장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저와 가까운 분들도 있었고, 김근태 의원과 가까운 분도 있었습니다.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② 정동영 전 장관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② 정동영 전 장관

-김근태 의원이 네‘거티브 전략’을 하는 것은 좀 이례적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음. 이번 전당대회는 플러스 전당대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이너스 전당대회도 있습니다. 2004년 1월 전당대회는 플러스 전당대회였습니다. 그때는 열린우리당의 창당 목적과 정신을 알리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아름다운 경선이었습니다. 2005년은 마이너스 전당대회였습니다. 서로 허깨비 노선투쟁, 실용이냐 개혁이냐는 공허한 노선투쟁을 가지고 상호비방, 서로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결국은 함께 무너졌습니다. 4월2일 전당대회를 마치고 재추락했습니다. 그 결과는 4·30 재보선에서 23 대 0으로 졌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마이너스 전당대회를, 치고받는 전당대회를 한 당에는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번 전대는 아름다운 협력과 경쟁의 전당대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칭찬만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김근태 장관이 없었다면 우리 당이 어떻게 됐을까요. 정동영이 없으면 열린우리당도 허전할 것입니다. 저에게도 김근태 장관이, 당에도 김근태 장관이 필요합니다. 지금 속속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시는데요,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인물들입니다.

-박영선 의원의 출마 여부가 관심사인데요?

=(웃으며)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박영선 의원은 안 나오는 것이 확실한가요?

=안나온다고 하던데요.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그간 전당대회를 보면 1인2표라는 특성상 연대가 많이 이뤄져 왔고, 연합이 많았습니다. 40대 기수 중에서 연대의 대상이 있습니까?

=연대는 짝짓기이고, 구정치의 냄새가 물씬 납니다. 당의 활력을 위해서 역동적인, 역동성이 필요합니다. 열린우리당이 2년 사이에 좀 낡아졌습니다. ‘리프레쉬먼트’(refreshment)가 필요합니다. 좀 신선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40대 김영춘, 송영길 의원 등을 만나서 도전하라고 했습니다. 이종걸 의원도 만났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말은 전했습니다.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당의 에너지를 뿜어올려야 한다, 당의 역동성을 만들라고 적극 권유했습니다.

디제이와 와이에스의 40대 기수론으로 질식해 가던 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의 야당 분위기가 활력을 얻었습니다. 2000년대에 추미애, 김민석에게 권했습니다. 새물결을 함께 만들자고, 새천년민주당에 역동성을 만들자고 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2004년 1월 새로운 개혁 지도부에 이어서 2년 만에 젊고 역동적인 지도부가 구성되면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박근혜, 이명박 두 지도자보다 훨씬 더 젊고 역동적인 지도부를 가질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난 연말에 <한겨레>가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유력 정치인들의 장점과 단점을 물어봤더니, 정 전 장관의 장점은 ‘순발력이 있다, 대중성이 있다, 젊다’였습니다. 그리고 단점은 ‘뚜렷한 색깔, 정책노선이 없다, 정동영다움이 없다, 콘텐츠가 없다. 약해 보인다’ 이런 지적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정동영 하면 2002년 국민경선 지킴이, 그리고 4·15 총선 승리를 연상한다고 합니다. 최근 정치사에서 2002년의 개혁정권 재창출, 그리고 4·15에서의 의회권력 교체, 그 이상의 일이 뭐 있었겠습니까? 저는 거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4·15를 치르며 공약을 내놨는데, 공약을 실천할 시간적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쉽습니다. 대신 통일부 장관으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으로 몰두했고,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정치를 왜 하필 당신이 끌고 가야 하느냐, ‘왜 정동영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제3의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1의 시대인 산업화 시대의 지도자는 그때대로의 능력을 요구받죠. 제2의 시대, 민주화의 시대는 투지와 열정을 가지고 구질서를 혁파하는 역할입니다. 이제는 궤도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제3의 시대는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제가 2002년 경선에서 나서면서 소통의 리더십이 이끌어야 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당신이 무슨 소통 전문가냐라고 물으면, 저는 매스컴에서 18년간 일한 사람인데, 기자는 듣는 사람입니다. 화자가 아닌 청자입니다. 기자되면 맨 처음 하는 것이 인터뷰 기술인데, 잘 묻고 잘 듣는 것이죠. 거기에 익숙해져서 저는 연설할 기회도 많지만, 주로 소그룹이던 큰 그룹이던 제가 말하는 시간보다는 듣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제3의 시대에는 듣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 점에서는 강점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제 생각이 짧고 모라자면 길고 깊은 생각을 취합니다.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주관까지 없어서는 안되겠죠. 저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주관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은 메우겠다는 열린 정신을 가지고 있지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부족한 것이 있지만, 부족한 것을 메우겠다. 이것이 저의 정신입니다.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내부적으로는 역시 양극화지요. 양극화 사회, 도대체 이게 뭐냐.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통해 그 결과가 사회 양극화로 나타난다면 여기에 대한 심각한 성찰, 정책의 실패에 따른 반성, 그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겠죠. 또 하나의 문제는 평화의 문제입니다. 50년간 지체된 불안정한 평화를 평화구조로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비전과 확고한 그림과 설계도와 추진력, 이것이 아마 중요한 국민적 의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바탕 위에 즉, 한 축은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문제, 그리고 평화를 구축하는 문제, 그 두 개의 요소 위에 신문화국가론, 이제 우리가 지향하는 ‘더 베스트 컨트리 인 더 월드’, 우리가 최고국가가 되는 비전, 그런 요구가 우리 국민에게 있다고 봅니다. 한류가 봄을 알리는 제비와 같다고 봅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뿌리와 전통, 창조적 능력, 창조적 융합력에서 오는 비전을 21세기 비전으로 담아 내는 것, 그것이 국민들의 관심사라고 전망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책을 준비하거나 쓰신 적이 있습니까?

=문화경제론을 준비 중입니다. 평화문제와 결합시켜 쓰려고 합니다.

-2월 전당대회 이후 지방선거가 있고, 그 이후 정개개편, 개헌 등 폭발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고 봅니다. 지방선거에 나설 인물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습니까?

=전당대회 준비와 5월 지방선거 준비를 병행해야 합니다. 의원 몇분에게 그 책임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인물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2월 전당대회 끝나고 나면 그 결과물을 가지고 직접 할 것입니다. 아직 허락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전당대회가 끝나면 어떤 인물로, 어떤 정책으로 5월 지방선거를 돌파할 것인지 당원과 국민들에게 선보이겠습니다. 지난 2004년 전당대회에 임할 때도 앞으로의 설계도를 가지고 임했습니다. 전당대회에서 당선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선되고 난 뒤의 항해도와 나침반이 없으면 지지율을 어떻게 올리겠습니까?

-인물에 대한 개념을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아까 말씀한 이른바 3대 세력의 대연대를 시험 가동하겠습니다. 폭넓게 제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의원님들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그 분들을 뵙고 하겠습니다. 또 대통령과의 소통도 중요합니다. 왜냐면 정부에 있는 분들을 영입해 오는 문제도 있어서,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상의하고 대통령께서 허락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의 대선후보 선호도 추이
정동영 전 장관의 대선후보 선호도 추이

-2004년 총선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전직 장관이나 ‘구닥다리’ 인물을 데려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인데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먼저 과학기술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징을 널리 구했습니다. 지도부에게 모셔오라고 했고, 여러 사람을 접촉했습니다. 그 결과가 홍창선 카이스트 총장입니다. 그리고 여당에 안보 전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군을 대상으로 구했습니다. 그 결과 군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시러 갔더니 거절했습니다. 고사하니까 더 욕심이 나더군요. 인격적으로 고매하다고 해서 모셔왔습니다. 여당인데 국제외교를 해야하지 않겠냐 해서, 외교관 한 명 모셔오자.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해서 모셔왔습니다. 외교·안보·과학기술 세 분야에 전문가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이 세 분야는 꼭 필요하다고 제가 먼저 주장했고, 그게 직능인데, 거기에 필요하다고 제가 한 것입니다. 그건 제가 정치부 기자하면서, 정치인 하면서 그 분야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 책임이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령당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실 것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동시에 예견된 일입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창당 정신에 비춰보면 통탄할 일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뻔히 예견되는 일을 지난 1년간 깊이 들여다 보지 못했습니다. 정당 민주주의의 완성은 여기에서 이뤄집니다.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의 건설, 그 상층에는 당정분리가 있습니다. 그 맨 아래에는 주요당원, 기간당원이 있습니다. 이 역시 전인미답,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저에게 많이 뒤집어 씌우더라구요. 정동영이 반대한다고.

그런데 한번 신문기사를 잘 찾아보세요. 신당 창당에서 기간당원 문제를 정당학회 학자들의 토론을 거쳐 신당창당의 요체로 가져온 것이 저입니다. 거기서 추미애 의원과 이견이 생겨 추 의원이 신당에 오지 않은 겁니다. 추 의원은 대선 끝나고 12월22일, 22인 신당창당 멤버 중 한명이었습니다. 기간당원 문제로 치열하게 논란을 벌이다 추미애 의원이 그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해서 그만뒀습니다. 저는 기간당원이 지난한 길이고, 한국에 문화가 없어 뿌리내리는 데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 이것을 어떻게 할것인가, 정당학회 김용호 교수, 조기숙 교수에게 용역을 줄 테니 고민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죠. 제가 당의장이었으면 내다보이는 결과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검찰 수사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에는 낯설음이 있다는 말처럼, 제도를 만들었는데 문화가 안되는 것이거든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선에 이기기 위해 당원 모집을 하는 것 막을 수 없거든요. 열린 자세로 현실 토대를 인정한 바에서 기간당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돈 이야기입니다. 저는 돈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영국 노동당도 일년에 5파운드입니다. 미국 민주당도 5달러입니다. 돈이 기준이 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참여와 교육, 그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당원은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느냐를 기준으로 해야 하고, 스크린 시스템, 추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계속 검증하고, 심사하고, 그래서 다른 당원을 교육할 수 있는 수준의 기간당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근차근 지난 2년간 했어야 할 입니다.

-당장 5월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원들이 공직선거 후보 선출을 해야 하는데요?

=지방을 다녀보니 관심이 거기에 있더군요. 당헌 당규에 입각해야 합니다. 대개는 3 대 2 대 5, 기간당원 3, 일반당원 2, 국민참여 5의 비율로 경선을 하게 되어 있지요, 당헌 당규를 기준으로 하면 됩니다.

-당장 손질할 방법은 없으신 거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해야죠. 어떻게 합니까. 있는 당원을 다 확인하고, 거당적 검증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인천하고 광주가 모범적으로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천, 광주가 모델 케이스가 될 것입니다. 시·도지부장이 잘하면 됩니다.

(보충 질문)

-실용노선의 실패는 없었다고 봅니까?

=성공하는 개혁이 중요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개혁이 중요합니다. 몸으로 실천하는 개혁,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개혁이 중요합니다. 사학법, 부동산법은 실천한 개혁입니다.

-출마회견에서 ‘독배’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정치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5월31의 성적표에 따라 축배가 될 수도,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상황에서 지방선거에서 승리처로 제시할 곳이 있습니까?

=5월 지방선거를 이야기하기엔 열린우리당 자체가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과도기 상태에 있죠. 2월18일 전당대회에서 정비하고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뛸 때 그때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인데요. 지지율 1위가 되면 결과도 괜찮을 것입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두 곳 빼고는 가망이 없는 것 아니예요? 현재 지역 언론사에서 한 것을 보면 전북지사와 대전시장 정도될까요?

-사실 고건 총리도 본인이 시대정신으로 통합형 리더라고 했습니다. 정 전 장관도 통합의 가치에 무게 중심을 뒀는데, 2007년 대선구도 전선을 이야기하면서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수구가 뭉친 기득권연합과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한판대결을 말하셨는데, 그런 구도와 통합은 모순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선거는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한 정당간의 대결이죠. 통합은 국민들을 상대로 한 통합입니다. 한나라당과 어떻게 통합합니까?

-열린우리당이 노선 상의 착오나 잘못은 없었나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보안법 문제입니다. 제가 2년전 당의장이었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선든 통과시켰을 것입니다. 몸으로 실천하는 개혁이어야 합니다. 그때 보안법을 처리했으면 한국의 이념지형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보안법 폐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죠?

=국가보안법이 처리되었으면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정신적 충격파의 영향은 우리 사회의 지형을 굉장히 다르게 짰을 것입니다. 성공하는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공허한 실용-개혁 논쟁은 허깨비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정체성이 그것입니다. 정체성이 그것인데, 연전연승해야지, 왜 연전연패합니까.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빠르게 결정하고 실천하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런 공리공담이 불요하다는 것이고, 책임 전가는 바람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집안이든 집안싸움하면 눈살 찌푸리고 집안이 안됩니다. ‘내탓이오, 내탓이오’하는 집안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전당대회는 마이너스 전당대회이고, 당을 망친 전당대회입니다. 지난해의 우를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아름다운 축제 전당대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래로 가는 연대’에 고건 총리도 포함됩니까?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이시고, 참여정부의 목표에 흔쾌히 동의한다면 같이 하실 수 있죠. 저는 고건 총리의 과거 (서울시장) 선거기획본부장이었습니다.

아까 보안법 얘긴데, 저는 보안법 폐지론자지요.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성한용 선임기자, 이태희 기자 shy99@hani.co.kr

사진/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정동영 장관은 누구?

앵커에서 화려한 정치입문…초대 당 의장 지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사 기자실을 방문해 당 복귀 인사를 하고 있다. 이종찬 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사 기자실을 방문해 당 복귀 인사를 하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정동영(53) 전 통일부 장관은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문화방송>에서 18년간 정치·사회부 기자, 뉴스앵커 등 언론인 생활을 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대학친구인 이해찬 총리(당시 국민회의 의원)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전주시 덕진구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됐다. 이후 김대중 총재와 동교동계의 두터운 신임 속에 국민회의와 민주당을 거치며 대변인을 세 차례나 맡았다. 본래 갖추고 있던 뛰어난 감각과 순발력에, 정치 경력이 쌓이면서 인기 정치인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특히 2001년 권노갑 전 의원을 ‘들이 받은’ 이른바 ‘정풍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비중을 급속히 높였다.

노무현 바람이 일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끝까지 사퇴하지 않고 버티며 ‘경선 지킴이’를 자임했다. 대선 뒤에는 민주당에서 탈당한 47명의 의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초대 당의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폭풍 속에서 ‘152석 신화’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총선 과정에서 이른바 ‘노인 비하’ 발언으로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놓는 쓰라림을 겪기도 했다. 2004년 6월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임명돼 1년6개월 동안 ‘대통령 수업’을 마치고, 지난 연말 당으로 돌아왔다. 이태희 기자

정동영 전 장관 주요 약력

△전북 순창(53) △서울대 국사학과 △<문화방송> 기자·앵커 △15·16대 의원 △민주당 국민경선 후보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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