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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왜 장혜영이 김종철을 형사고소하지 않냐고요?

등록 2021-01-29 19:18수정 2021-01-30 02:3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정치팀 이지혜입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자신을 성추행한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를 형사 고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계속해서 “제 식구 감싸기냐”거나 “친고죄도 폐지됐는데 왜 고소 안 하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한 시민단체가 장 의원 의사와 무관하게 김 전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장 의원은 이에 대해 “저의 일상 복귀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경솔한 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자고 고소하는 것이 어떻게 피해자의 회복을 방해하는 일이 되는 걸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해자가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장 의원은 그 첫번째 이유로 ‘수사 과정에서 벌어질 2차 가해’를 들었습니다. “왜 원하지도 않은 제3자의 고발을 통해 피해를 상기하고 설명하며 그 과정에 수반될 2차 가해를 감당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당내 절차에 따라 가해자가 출당 조치되었고 피해자는 이를 수긍하고 있으니, 추가적인 법적 절차는 “끝없이 피해 사건으로 옭아넣는 것”에 불과하다고 장 의원은 말합니다.

형사 고소를 주장하는 이들은 ‘친고죄 폐지’를 근거로 들지만, 이 경우와는 맞지 않습니다. 친고죄 폐지의 취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부작용을 막아 피해자의 의사 표명을 돕기 위함이었거든요. 가해자가 모든 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피해자는 공동체의 든든한 지지를 받으며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정의당 사례에 적용하기엔 많이 어색하지요. 피해자 의사를 무시하며 부득불 형사 고소를 진행한 이들은 장 의원 말대로 “입으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면서 실상 성폭력 사건을 자기 입맛대로 소비”하려는 의도 외에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장 의원의 용기를 지지하기에 김 전 대표의 강력 처벌을 원했던 분들도 예상과 다른 전개에 매우 의아함을 느낄 법합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간 봐온 성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아서 피해자가 법에 기대어 자기 피해를 입증해야 했던 경우가 많았죠. ‘법적 대응’만 성폭력 사건 해결의 유일한 길이자 화룡점정으로 여겨진 것도 그 일환입니다. 하지만 장 의원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신뢰하고, 그 공동체는 피해자의 신뢰에 응답하면서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공동체적 해결은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공동체가 사법적 개입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며 피해자를 종용할 수도 있죠. 이 경우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미사여구는 조직보위론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조직의 ‘대의’를 위해 내부 성폭력 사건은 밖에 알려선 안 된다는 과거 운동권 논리 말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의 사례를 그리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대다수 피해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예외가 이 사건에는 여럿 겹쳤으니까요. 오랜 친분에 휘둘리는 한계를 보여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달리, 정의당에는 무엇보다 피해자를 우선시했던 ‘젠더인권본부장’ 배복주 부대표가 있었고요. 힘든 상황에도 분노나 좌절보다 신뢰와 회복에 집중했던 피해자 장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해야 하지만 흔히 볼 수는 없는, 가해자 김 전 대표의 빠른 시인과 사과가 있었지요.

정의당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 그 어느 쪽으로도 ‘선 긋기’가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수많은 정치권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그를 공동체 밖으로 내치는 일이 빈번합니다. 혹은 가해자를 손쉽게 타자화하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도 하죠. 조직 전체가 아니라 ‘공천 과정’이 잘못됐다 탓하거나 가해자를 탈당시킨 뒤 사건을 잊어버리는 방법이 이에 속합니다. 하지만 정의당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부인할 수 없는 당의 주요 자산이었기에 그 어떤 선택지도 불가능했습니다.

정의당이 선택한 길도 그 끝을 예단하기는 이릅니다. 지금까지는 정의당이 김 전 대표에게 출당 조처를 내리고 2차 가해에 엄격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를 공동체 밖으로 내쫓지 않으면서, 가해자와 구분 짓지 않으면서 공동체 전체가 무거운 책임을 지는 방법은 우리 정치권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한번도 직면해본 적 없는 과제입니다. 정의당은 이 도전에 성공해낼 때 비로소 참담함을 느끼고 있을 시민과 지지자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지혜 정치팀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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