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모습.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중국·북한 대표단 등이 함께 참석했다. 청와대 제공
미국이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이른바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발표해,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 여부를 포함한 한국 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마저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분위기라,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 쪽이 ‘선수단은 참가하되, 정부 대표단은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터라, 베이징올림픽 계기에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일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2018년 평창, 2021년 도쿄, 2022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이번 올림픽이 동북아와 세계 평화와 번영, 남북관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기존 공식 견해를 재확인했다. 아울러 이 핵심 관계자는 “미국이 외교적 경로를 통해 (보이콧 결정을) 미리 알려 왔다”고 확인하고는, “다른 나라의 외교적 결정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더는 언급을 피했다. “신장지역에서의 집단학살과 지속적 인권 유린” 등을 이유로 보이콧 방침을 밝힌 미국 쪽과 결이 사뭇 다르다.
청와대 쪽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압박하지는 않으리라 기대하는 듯하다. 예컨대 여러 청와대 관계자가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재 공급망과 한한령(한류 제한령) 등 중국과 경제관계가 밀접한 한국의 처지를 미국이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설명이다. 실제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그들 각자가 결정하도록 맡겨둘 것”이라거나 “각국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라는 원론적 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 대표단의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참석 여부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불참, 정부 대표단 참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우선 문 대통령이 무리를 해서라도 베이징올림픽에 참석할 이유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미국이 보이콧을 선언한 터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에 올 리가 없고, 베이징올림 계기 남·북·미·중 종전선언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아울러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23개월째 조·중 국경을 폐쇄하고 ‘농성 방역’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이렇듯 베이징올림픽이 ‘한반도 평화 과정’의 재가동을 위한 정상외교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지면, 문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에 참석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앞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한정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서열 7위)을 보낸 터라, ‘격’을 맞추느라 대통령이 직접 움직여야 할 필요도 없다.
일단 정부는 체육 관련 주무장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참석자로 이미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는 대한체육회가 개막식 등 참석 명단을 알려달라는 중국 쪽 요청을 받고 통상의 관례에 따라 주무부처 장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한다고 전산시스템에 등록한 것으로, 정부의 ‘최종 공식 방침’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베이징올림픽까지는 두달 가까이 시간이 남은 만큼 정부는 ‘최종 공식 방침’ 발표를 미루며 동향을 더 지켜보려는 분위기인 듯하다. 예컨대 청와대는 지난 3일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의 텐진 회담 결과를 전하며 “시진핑 주석과 문재인 대통령 간 필요한 소통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지만, ‘베이징 올림픽’ 관련 내용은 넣지 않았다.
문제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를 계기로 한층 첨예해질 미-중 대립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급망 재편과 ‘한반도 평화 과정’ 등의 문제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당장 당사국인 남·북·미·중이 참여해야 하는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부터 그렇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계기에 당사국 간 만남 등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있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미국이 내세운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한 정부의 대응 수위도 거듭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신장 인권 문제는 정부도 주시하고 있고 관련 외교적 소통하고 있다”는 기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가치 외교’의 압박 수위를 높여간다면 정부로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이 9∼10일 개최할 예정인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의 대중 견제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 등도 한국 외교에 숙제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가 이날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겠다고 밝혔고, 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도 이에 동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완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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