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김선태 감독(왼쪽)과 안현수 코치(그 옆)가 5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쇼트트랙 혼성 계주 결승에서 중국팀이 1위를 차지하자 좋아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날밀기, 바깥돌기, 외다리주법….
1992 알베르빌겨울올림픽부터 시작된 한국 쇼트트랙의 세계 제패 역사와 함께 등장한 비법들이다. 한국은 이런 기술개발과 전략전술, 선수들의 유연성과 순발력, 체력을 앞세워 세계를 평정했다.
하지만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5일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2000m 혼성 계주에서 한국은 예선탈락했지만, 한국의 ‘고급두뇌’를 유치한 중국은 대회 첫 금메달을 쇼트트랙에서 챙기면서 기세를 올렸다.
한국 타도를 외치던 중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선태 감독을 영입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또한 중국팀의 기술코치로 활약하고 있고, 평창 대회 1500m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은 중국에 귀화했다.
김 감독이 팀을 관리하면서 한국식의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승부욕 디엔에이(DNA)를 주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금메달 6개를 따냈던 안현수도 자신의 노하우를 중국 대표선수들에게 전수했을 것이다. 임효준은 국적 변경에 따른 대표팀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이 5일 베이징 서도우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2000m 혼성계주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한국은 그동안 쇼트트랙의 신기술 생산국이었다. 1992년 김기훈이 겨울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딸 때 한쪽발로 지탱하고 왼손을 짚으며 곡선 구간을 도는 외다리주법을 선보였고, 김동성과 전이경이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결승선 날밀기로 금메달을 딴 바 있다. 월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바깥으로 돌며 추월하거나 호리병주법으로 가속 탄력을 유지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일반화된 기술이지만, 원조 국가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경험이나 감각, 전술을 직접 배우는 것은 또 다르다.
중국은 올림픽 개막 전까지 쇼트트랙 대표팀의 준비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등 외부에 차단막을 쳤다. 혼성 계주에서 금메달을 일군 중국의 우다징은 경기 뒤, “한국인 코치진이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4년간 열심히 훈련해 쇼트트랙의 첫 금메달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이룬 결과여서 더 뜻깊다”고만 말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실력 있는 지도자들이 새로운 대표팀을 맡아 전력을 향상시키는 경우는 많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 남자하키를 준우승으로 이끈 김상열 감독은 중국 여자하키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적이 있고, 중국의 탁구 선수나 지도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 남자양궁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대표팀을 이끄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한국은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에서만 2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런 압도적인 지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라이벌 중국이 한국과의 맞대결에서 기선을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뒤엔 한국 지도자들의 역량이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