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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유신 독재 이전엔 법원이 대법원장 뽑았다

등록 2018-05-12 13:20수정 2018-05-13 14:14

[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통령 개헌안 ‘사법부 독립’ 미흡
▶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한 ‘6월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 개헌 시기를 둘러싼 논란으로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대통령 개헌안은 권력 분산과 지방자치 강화 등에 있어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내놓은 안으로서는 미흡한 대목도 적지 않다는 평이다. 그중 하나가 사법부 독립으로, 특히 대법원장 문제가 핵심이다.

사법부 공식 기구로 출범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첫 회의가 지난달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렸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 방지 등 법원 민주화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날 첫 회의에 참석해 전국 각 법원에서 참석한 판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사법부 공식 기구로 출범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첫 회의가 지난달 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렸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 방지 등 법원 민주화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날 첫 회의에 참석해 전국 각 법원에서 참석한 판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통령개헌안 법원 분야 “미흡” 평
대법원장 권한 대폭 줄였으나
대법관추천위 등에 대통령 지분
“사법 독립 갈 길 멀어” 지적

유신부터 대통령이 대법원장 임명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맞물려
정치권력의 사법통제 수단 작용
“법원에 선출권 돌려줘야” 견해

“개인적으로 친분도 없는 저를 각하께서 대법원장 후보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시는 것만도 영광이며, 임명받는다면 최선을 다하여 임명권자와 국민에게 봉사하겠습니다.”

“과거에 각하를 잘 보좌하지 못한 데 대하여 반성하고 앞으로는 새로운 각오로 대통령을 보좌하겠습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직후 대법원장 후보에 오른 두 사람이 청와대 비서관들을 만나서 한 말이다. 전자는 당시 대법원 판사였던 유태흥(2005년 사망·이하 호칭 생략)이며, 후자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있던 김영준(2013년 사망)이었다. 대통령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인 우병규와 정무1비서관 박철언, 민정비서관 손진곤이 대법원장 후보를 사전 면담한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2005)

박철언은 12·12 쿠데타(1979)로 전두환 세력이 헌정을 중단시킨 뒤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법사위원으로 참여하고, 뒤이어 바로 전두환 정권의 청와대 정무1비서관에 기용된 실세였다. 1980년대 내내 권력의 중심에서 일한 그는 각종 기록을 꼼꼼하게 남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썼다. 정치권력이 사법부를 얼마나 유린하고, 법조계 고위인사들은 어떻게 굴종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만큼 박철언 회고록을 더 살펴보자.

대법원장 후보를 정무수석실에서 면접

1981년 4월1일 서울 사직동 자택에서 박철언 일행을 만난 유태흥은 “분단국의 현실에 비추어 사법부의 수장은 정치적, 공안적 사건에서는 정부에 협력해야 하고, 일반 사건에서는 양심적으로 소신껏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조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법부 혁신, 법조 민주화가 되어야 하나, 재임용 과정에서 국가관이 희박하고 품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들은 다음날인 4월2일 김영준을 아예 청와대 정무1수석실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영준은 “사법부의 독립도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난 이후에 있을 수 있으며, 정부와 협력하고 국민의 신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조 쇄신이 되어야 합니다. 대임이 주어진다면 법관과의 평소의 지면을 토대로 대화하고 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유사시에는 압력과 청탁의 방법이 아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정부에 협력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충성 서약’을 했지만, 전두환은 며칠 뒤 유태흥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다. 유태흥은 권력과의 ‘밀약’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는 1985년 민주화 시위 학생을 풀어주던 인천지법 판사 박시환을 영월지원으로 내쫓았으며, 이를 비판하는 다른 판사를 군산지원으로 인사발령 냈다.

당시 정권의 사법부 인사 개입은 대법원장에 그치지 않았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도록 돼 있는 대법원 판사 후보를 청와대가 직접 면접했다. 박철언 등은 서울 하얏트호텔 로열스위트룸에 방을 잡아놓고는 대상자들을 한명씩 불렀다. 나름대로 취한 “최대한의 예우”였다. 청와대 비서관 면담을 통과한 13명은 유태흥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다음날 그가 제청하는 형식을 취해서 대법원 판사에 임명됐다.

대법원장에 대한 대통령 권력의 직접적인 면접이 언제까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와 법조인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일부 드러났듯 이러한 권-법 유착과 거래가 단지 과거의 일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법원 쇄신을 바라는 소장 판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국회의 견제도 만만치 않지만, 정권의 의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사법부 장악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으로 ‘골라서’ 임명하고, 대법관 임명제청권 및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대법원장은 ‘알아서’ 정권 입맛에 맞출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대법원장만 틀어쥐면 사법부에 대한 통제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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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26일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서 사법부 관련 부분의 핵심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권 내려놓기다. 대법관에 대한 제청은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했으며, 일반 법관에 대한 인사권도 반드시 법관인사위원회의 제청을 받은 뒤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대법원장이 갖고 있던 권한을 민주적으로 분산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은 존치됐다. 대법원장에게 인사권이 없으면 대법원장을 누가 뽑든 정치권력의 사법부 통제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논리가 밑바탕에 깔렸다. 정치권력이 설령 자신들과 코드가 같고 권력지향적인 인물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더라도 그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을 좌지우지할 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 개헌안에서 대법원장의 힘이 현재에 비하면 매우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추천위원회(위원 9명 중 3명은 대법원장 몫)나 법관인사위원회 구성에서 대법원장의 입김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대법관추천위원회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다수를 점하게 돼 있다. 대법관추천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추천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는데, 국회 몫의 일부는 여당 추천이기에 적어도 9명 중 4~5명은 확실한 대통령 편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 몫 대법관추천위원 3명도 대통령과 간접적으로 통할 수 있다. 결국 대법관 구성은 정권 성향에 따라 구성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좋은 대법원장’과 신뢰받는 사법부의 존재는 대통령의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번 개헌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는 개헌안 발표 뒤 낸 논평에서 “대법관추천위원회 구성이나 대법원장 임명 관련 대통령의 인사권을 과감히 축소하지 않고 보도자료에도 명료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해서 우려스럽다”며 “사법부의 정권에 대한 예속을 막을 방안을 보다 진취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삼권분립을 생각한다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동등한 위치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의 자격으로 대법원장을 임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서울신문> 시론, 2018. 4.9)고 밝혔다.

김외숙 법제처장(오른쪽)이 지난 3월26일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려고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왼쪽)에게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외숙 법제처장(오른쪽)이 지난 3월26일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려고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왼쪽)에게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정희 정부 초기엔 법관추천회의가 제청

실제로 우리 헌정사에서 대법원장은 오랫동안 대통령이 아니라 사법부가 결정했다. 1948년 정부 수립 때의 사법부 구성은 지금 봐도 모범적이다. 제헌 헌법에는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제78조)고 규정돼 있었지만, 대법원장 임명 절차를 정한 법원조직법에서 행정부의 입김 배제를 명시했다. 즉, 1949년 제정된 법원조직법은 “대법관의 임명 및 대법원장의 보직은 대법원장, 대법관, 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이를 행한다”고 적시했다. 대법원장에 대한 실질적 선출권을 고위법관회의에 주면서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인 절차로만 규정했다. 이승만 정부 때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가 정권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런 조항이 그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국회 및 법원이 대통령 권력과 맞서 싸워 얻은 성과물이었다. 애초 정부가 제출한 법원조직법 제정안에는 대통령이 실질적인 임명권을 행사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국회가 법사위 대안으로 위와 같은 내용의 수정안을 냈다. 법관회의에서 대법원장을 사실상 선출하게 하고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이를 추인하도록 하는 법사위안이 통과되자, 이승만은 대통령의 헌법상 임명권을 제한하므로 위헌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국회는 재의를 통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이승만은 법관회의 제청 절차를 삭제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법조계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법안을 결국 철회했다.(한인섭, <가인 김병로>, 2017)

4·19 혁명(1960)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의 사법부 인사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안을 아예 헌법에 명시했다. 즉,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이를 선거하고 대통령이 확인한다”(제78조)고 정했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법조계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이를 ‘확인’하는 형식적인 인준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도 집권 초반에는 이러한 전통을 감히 깨지 못했다. 1963년의 제3공화국 헌법은 “대법원장인 법관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대통령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이 있으면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제99조)고 적시했다. 대법원장 제청권자를 선거인단에서 법관추천회의로 바꿨을 뿐이다.

대법원장을 대통령 입맛에 맞게 ‘골라서’ 임명하는 제도는 1972년 유신헌법 때 처음 생겼다. 유신헌법 제103조는 “대법원장인 법관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고 못박았다. 그 전까지 법원에 있던 대법원장에 대한 실질적인 임명권은 이때부터 대통령의 손에 넘어갔다. 영구 집권을 꿈꾼 박정희가 입법부는 유정회(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를 통해, 사법부는 대법원장을 통해 장악하려는 유신독재 체제의 일부였다. 법원은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이름 붙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1975. 4.8 대법원장 민복기) 등에서 보듯 정권의 하수인 노릇에 충실했다.

대통령 손에 들어간 대법원장 임명권은 이후 전두환의 5공화국에 이어 6월항쟁의 성과를 담은 1987년 헌법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는 <가인 김병로>에서 “그(역사적 맥락)에 대한 충분한 반성적 숙고 없이 헌법이 개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3월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3월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법원장 권한 더 축소하는 것이 중요” 지적도

하지만 대통령제 나라에서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종수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법관회의에서 대법원장을 추천하거나 선관위처럼 대법관 회의에서 호선하는 방안 등도 선택할 수 있지만, 미국처럼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해도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라며 “진짜 문제는 제왕적 대법원장에서 온다. 그런 점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그가 의장인 대법관회의로 돌리는 정도로만 바꾼 정부의 이번 개헌안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점에서 많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징검다리교육공동체 곽노현 이사장(전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도 “사법부 독립의 첫번째 핵심은 인사권을 갖지 않는 대법원장이고 대법원장 선출 방식은 그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장 선출 문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이나 법관추천회의에 주는 방안 모두 일장일단이 있지만 법관추천회의 방식에 손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도 연내 개헌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에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 문제가 다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에 관한 논의 못지않게, 사법 독립은 국민적 관심과 토론이 필요한 분야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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