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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의 ‘직보 인사안’ 문 대통령 재가하자…신현수 “창피하다”

등록 2021-02-17 14:00수정 2021-02-22 08:24

신 수석 사의표명의 전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한겨레> 자료사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한겨레> 자료사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 한 달 반 만에 사의를 밝힌 데에는 자신과의 협의를 배제한 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접 보고(직보)하고 발표를 강행한 게 결정타로 작용했다. 검찰 인사 등을 통해 여권과 검찰 간 대립 구도를 완화하고, 검찰 내부 불만을 진정시키려는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역할 축소’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신 수석은 주변에 “자존심이 상해 못 살겠다”, “더는 수석직을 못 하겠다”고 강하게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급 인사 발표 전 어떤 일이?

<한겨레>가 17일 여권과 법조계 등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박 장관은 지난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이나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 등을 두고 박 장관과 윤 총장이 이견을 보이면서 신 수석이 조율에 나섰다. 지난해 12월31일 임명된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서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조관계’를 복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신 수석은 본래 8일 박 장관과 만나 인사 관련 협의를 할 예정이었던 터라, 일요일인 7일에 인사가 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날 인사 발표 전에 대검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들은 ‘신현수 패싱 사건’의 원인으로 박 장관을 지목한다. 박 장관이 신 수석과 최종 조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보’(직접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신 수석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고 인사 발표에 동의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7일 기자들과 만나 “박 장관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했다. “(신 수석과 박 장관 사이)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발표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검찰 인사 절차와 비교하면 의아한 점이 있다. 검찰 인사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실무협의를 거쳐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대통령이 이견이 있으면 다시 수정해 재가를 받는 것이 통상적 절차다. 대통령이 수석 뜻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장관 말만 듣고 인사안을 재가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검사장 인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박 장관의 뜻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사”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검찰 간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했던 신 수석으로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아직도 격앙된 신 수석…일단 정상 출근 중

신 수석은 검찰 고위급 인사가 발표된 뒤 여권과 법조계 등에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 창피해서 더는 못 하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수차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은 사의 표명 사실이 보도된 16일에도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상 출근하고 있지만, 박 장관에 대한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여전히 거취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 인사발표 뒤) 신 수석이 사의를 몇 차례 표시했고, 그때마다 대통령이 만류했다. 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수석이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문재인 정부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서 법무부와 검찰 관계를 복원하려는 자신의 역할이 초반부터 무너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사의를 만류하는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신 수석이 임명된 지 두 달도 안 돼 그만둘 경우 청와대 참모와 장관 사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문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박 장관에 대한 신 수석의 불만과 사의 표명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린 것도 민정수석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사의를 접게 하려는 수습 차원이라는 게 여권 쪽 설명이다.

신현수 민정수석(왼쪽)이 지난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신현수 민정수석(왼쪽)이 지난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광철 비서관과 갈등설은 선 그어”

다만 청와대는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계기로, 박 장관이 검찰 통제를 위해 추 전 장관 시절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는 등의 인사안을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논의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존 민정수석실 비서관 등과의 갈등도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에 대해선 선을 그은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검찰 인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정수석실 내 이견은 없었다. 마치 이광철 비서관이 법무부 편을 들고 민정수석을 ‘패싱’한 것으로 (보도가 나오는데) 제 명예를 걸고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 박 장관에게 ‘이렇게 인사를 내면 안 된다’고 설득하는 쪽이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 쪽은 사의설이 나왔던 이 비서관은 민정수석실에 남기로 했으며, 이명신 반부패비서관이나 김영식 법무비서관은 전임 김종호 민정수석 시절 이미 사표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이번 사안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세균 총리나 박 장관도 얘기했지만,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사안으로 선정되어서 사법부 판단 대상이 되는 것에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 대통령이 뭐라고 한 적은 없다”며 “문 대통령이 격노해서 그게 마치 (인사갈등의) 출발인 것처럼 보도되는 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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