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 한 달 반 만에 사의를 밝힌 데에는 자신과의 협의를 배제한 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접 보고(직보)하고 발표를 강행한 게 결정타로 작용했다. 검찰 인사 등을 통해 여권과 검찰 간 대립 구도를 완화하고, 검찰 내부 불만을 진정시키려는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역할 축소’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신 수석은 주변에 “자존심이 상해 못 살겠다”, “더는 수석직을 못 하겠다”고 강하게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가 17일 여권과 법조계 등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박 장관은 지난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이나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 등을 두고 박 장관과 윤 총장이 이견을 보이면서 신 수석이 조율에 나섰다. 지난해 12월31일 임명된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서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조관계’를 복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신 수석은 본래 8일 박 장관과 만나 인사 관련 협의를 할 예정이었던 터라, 일요일인 7일에 인사가 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날 인사 발표 전에 대검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들은 ‘신현수 패싱 사건’의 원인으로 박 장관을 지목한다. 박 장관이 신 수석과 최종 조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보’(직접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신 수석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고 인사 발표에 동의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17일 기자들과 만나 “박 장관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했다. “(신 수석과 박 장관 사이)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발표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검찰 인사 절차와 비교하면 의아한 점이 있다. 검찰 인사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실무협의를 거쳐 민정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대통령이 이견이 있으면 다시 수정해 재가를 받는 것이 통상적 절차다. 대통령이 수석 뜻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장관 말만 듣고 인사안을 재가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검사장 인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박 장관의 뜻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인사”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검찰 간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했던 신 수석으로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종·서울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신 수석은 검찰 고위급 인사가 발표된 뒤 여권과 법조계 등에 “자존심이 몹시 상한다. 창피해서 더는 못 하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수차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 수석은 사의 표명 사실이 보도된 16일에도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상 출근하고 있지만, 박 장관에 대한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여전히 거취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법무부 인사발표 뒤) 신 수석이 사의를 몇 차례 표시했고, 그때마다 대통령이 만류했다. 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수석이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문재인 정부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서 법무부와 검찰 관계를 복원하려는 자신의 역할이 초반부터 무너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사의를 만류하는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신 수석이 임명된 지 두 달도 안 돼 그만둘 경우 청와대 참모와 장관 사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문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박 장관에 대한 신 수석의 불만과 사의 표명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린 것도 민정수석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사의를 접게 하려는 수습 차원이라는 게 여권 쪽 설명이다.
신현수 민정수석(왼쪽)이 지난달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청와대는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계기로, 박 장관이 검찰 통제를 위해 추 전 장관 시절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는 등의 인사안을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논의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존 민정수석실 비서관 등과의 갈등도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에 대해선 선을 그은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검찰 인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정수석실 내 이견은 없었다. 마치 이광철 비서관이 법무부 편을 들고 민정수석을 ‘패싱’한 것으로 (보도가 나오는데) 제 명예를 걸고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 박 장관에게 ‘이렇게 인사를 내면 안 된다’고 설득하는 쪽이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 쪽은 사의설이 나왔던 이 비서관은 민정수석실에 남기로 했으며, 이명신 반부패비서관이나 김영식 법무비서관은 전임 김종호 민정수석 시절 이미 사표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이번 사안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세균 총리나 박 장관도 얘기했지만,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는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사안으로 선정되어서 사법부 판단 대상이 되는 것에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 대통령이 뭐라고 한 적은 없다”며 “문 대통령이 격노해서 그게 마치 (인사갈등의) 출발인 것처럼 보도되는 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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