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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이철희 정무수석…‘늦은 실험’ 성공할 수 있을까

등록 2021-04-18 13:59수정 2021-04-18 18:06

정치BAR_이완의 정치반숙
이철희 신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 1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희 신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 1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이철희 정무수석이었습니다. ‘썰전’ 등 정치예능으로 이름을 알린 셀럽이어서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 만에 처음 정무수석으로 입성한 ‘비문’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정무참모입니다. 대통령을 대신해 청와대와 여당 간의 가교 역할은 물론, 때론 야당과도 접촉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처리돼야 할 입법 정책을 놓고 청와대의 승인이 없을 경우 여당이 재량권을 갖지 못해 야당과 대치하는 바람에 정국이 경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권에서 정무수석은 야당 인사들의 민원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기능이 사라졌지만 정무수석에게는 그만큼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력이 중요합니다.

전병헌-한병도-강기정-최재성으로 이어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은 친문 주류 정치인의 몫이었습니다. 문 대통령과의 친밀도·동질감이 무엇보다 우선시됐고 그러다 보니 친문 중에서도 강성 정치인들이 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친문 정무수석’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초대 전병헌 수석은 뇌물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6개월 만에 낙마했고, 2019년 1월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한병도 수석은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재성 수석은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뒤 발탁됐지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만남은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고 결국 4·7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이철희 정무수석 내정이 참신한 뉴스로 다가오지만 그의 기용이 갑자기 검토된 건 아닙니다. 이 수석은 2019년 10월 21대 총선 불출마를 결심했을 때부터 정무수석으로 문재인 정부 성공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밝혔습니다.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부터 1년6개월이 지나서야 청와대에 입성한 겁니다. 그 기간 동안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급전직하했고 상상하기 힘들었던 레임덕은 현실이 됐습니다. 권력누수가 시작된 시점에 막차에 오른 이 수석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입니다.

이철희 신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오른쪽)이 1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최재성 전 수석과 손잡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희 신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오른쪽)이 1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최재성 전 수석과 손잡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수석이 일정한 성과를 내기 전에 청와대에 안착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입니다. 그는 그동안 칼럼을 통해 여당의 무능과 오만을 경고하고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등 여권 핵심들과는 확실히 다른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그동안 쓴 칼럼을 정리해봤습니다.

“여권도 윤석열을 쉬운 상대라느니, 소영웅주의자로 폄훼하면서 자족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그의 부상에 여권이 져야 할 책임을 인정하면 좋겠다. 자신들이 발탁했고, 힘을 몰아줬다. 어느 순간 돌변해 그를 공격하고 쫓아내려 하면서 그의 체급을 올려줬고, 반문의 상징·구심으로 만들어줬다. 또 의석수로 밀어붙여 그나 검찰이 정치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줬다. 자업자득, 누굴 탓하랴!” [세상읽기] 윤석열을 이해하는 방법

”우리보다 국가부채가 더 많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보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재정 타령이다. 입만 열면 재정 건전성을 되뇌고 민생 안정성은 뒷전이다. 이런 형편임에도 정부와 여당의 책임 있는 리더들이 이 완고한 재정보수주의의 틀을 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추-윤 갈등’이 아니라 재정 민주화에 쓰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쏟았다면 지금처럼 위축되고 수세에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능으로 인한 자업자득, 이것이 현 지지율 하락의 본질이다.” [세상읽기] 엉뚱한 데에 한눈팔지 않아야

”비유컨대, 집토끼만 잡거나 산토끼까지 쫓을 게 아니다. 성패는 들토끼에 달려 있다. 집토끼·들토끼의 연합을 잃으면 소수파로 전락할 것이다. 흩어지고 있는 이 연합을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집토끼 운운하는 것은 무능의 알리바이, 자멸적 전략이다. 우리끼리 오순도순 잘 지내려면 정치 안 하는 게 맞다.” [세상읽기]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야당 복은 누릴 만큼 누렸다. 통합당이 싫어서 미운 민주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 더 이상은 어렵다. 소수당으로서 고군분투한 민주당에 대한 보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통합당에 대한 응징은 총선으로 완성됐다. 이제 민주당은 통합당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성과 여부에 대한 절대적 가치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에 대해선 야박해지고, 반통합당 정서는 옅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힘자랑만 할 뿐 야당을 설득하는 실력이나, 대중적 동의를 얻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상읽기] 이대로 가면 진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연말 처음으로 검찰 출신 신현수 민정수석을 기용했습니다. 신 수석은 검찰과의 안정적 협조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3개월 만에 청와대를 나갔습니다. 조국 사태 이후 여권 내부에서 강고하게 고착된 ‘대 검찰 강경 기조’를 바꿀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수석은 어떨까요. 과거의 높은 국정 지지율과 총선 압승으로 굳어진 ‘선명한 개혁 완수’라는 정부여당의 국정 기조를 전환시킬 수 있을까요.

이 수석은 인사 발표 직후 청와대 브리핑에서 “조금 다른 생각 및 여러 옵션을 문 대통령이 충분히 검토해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며 “4·7 재보궐선거의 민심을 잘 헤아려 할 말은 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표정이 밝았습니다.

이철희 신임 정무수석. 청와대 제공
이철희 신임 정무수석. 청와대 제공
이날 이 수석은 보통 인사 대상자들이 보여주는 자신의 근엄한 얼굴만이 나오는 이른바 ‘명함판 사진’ 대신 자유로운 표정이 담긴 프로필 사진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비문 정무수석’이라는 아직 가보지 않은, ‘늦은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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