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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32년 전 고르바초프의 경고, 무엇이 푸틴의 침공 불렀나

등록 2022-02-28 09:01수정 2022-02-28 09:40

서방 “나토 확대 없다” 약속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동진’ 본격화
미국은 동유럽국에 MD 배치 강행

제재에도 물러날 기미 없는 푸틴
전쟁 멈추려면 외교 문 닫아선 안 돼
러시아군 탱크가 24일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르먄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 탱크가 24일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르먄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만약 소련 인민들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심각한 위험이 생길 것입니다. 이건 허세가 아니에요.”

1990년 5월31일 백악관에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났던 미하엘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한 말이다. 당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동유럽의 체제 전환과 냉전 종식, 그리고 독일 통일 과정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고르바초프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확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약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결국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나토의 동진이 본격화되고 급기야 러시아의 심장부에 가장 가까운 우크라이나마저 나토 가입을 타진하면서 푸틴이 ‘예방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예방 전쟁은 무력을 사용해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안보 위협을 미리 제거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적대국의 공격이 임박하지 않은 상황에 취해지는 일방적인 전쟁 개시라는 점에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동시에 이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푸틴은 독일 통일 당시 국가보안위원회(KGB) 고위 관료로서 지정학적인 격변을 생생히 목도한 인물이다. 또 2000년 집권 직후부터 나토 동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동진이 계속되자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사건은 소련의 몰락이었다”며 힘을 통한 명예 회복과 영향력 재건에 나섰다.

이 와중에 발생한 것이 바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이었다. 직전에 미국은 새로운 나토 회원국이 된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를 강행했다. 명분은 이란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미국의 위선이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5년에 이란 핵협정이 타결되었음에도 오히려 동유럽 엠디를 강화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에 대한 푸틴의 배신감은 더더욱 커져갔다.

이번 전쟁을 막기 위한 미국의 마지막 노력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누락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나토가 결정할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대신 미국이 꺼내 든 카드는 강력한 경제제재 경고였다. 그러나 이는 역부족이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존엄과 안보가 달린 문제라고 간주한 푸틴이 경제제재에 물러설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물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국제 평화와 안정을 뒤흔드는 행위이다. 푸틴은 규탄받아 마땅하고 또 즉각 전쟁을 멈춰야 한다. 동시에 이건 ‘우리가 원하는 푸틴’이지 ‘있는 그대로의 푸틴’은 아니다. 아마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제거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친러 공화국들이 안착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계속 무시하면 신냉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등 서방은 외교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우방국인 중국도 적극적인 중재 외교에 나서야 한다. 하루빨리 전쟁을 멈추는 것만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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