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가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미사일을 만드는 국내 방산업체를 방문하려다 무산됐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오는 15일 엘아이지(LIG)넥스원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방문 사실이 공개되자 취소됐다고 방산업체 관계자가 14일 전했다. 최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엘아이지넥스원 방문 의사를 전했고, 15일 포노마렌코 대사가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엘아이지넥스원을 찾기로 했다. 엘아이지넥스원은 천궁(중거리 지대공미사일)과 신궁(휴대용 지대공미사일), 현궁(휴대용 대전차미사일) 등을 생산한다. 이 업체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4조원대 천궁 수출을 성사시킨 바 있다.
애초 포노마렌코 대사는 엘아이지넥스원을 찾아서, 러시아에 맞서 싸울 미사일을 지원해달라고 직접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무기 지원을 거듭 요청했으나 정부는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엘아이지넥스원 관계자는 “정부 승인이 없으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포노마렌코 대사가 방문해도 구체적인 무기체계가 아니라 업체에 대한 개괄적 설명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엘아이지넥스원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대표이사가 아니라 해외사업부문장이 포노마렌코 대사에게 설명을 하는 등 행사의 공식성을 낮추고 비공개 방문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이날 오후 방문 하루 전 일정이 보도되자 비공개 진행이 어려워졌고, 결국 방문이 무산됐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회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 배, 러시아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며 “저희가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초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에 대전차미사일, 소총 등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지난 8일 양국 국방장관 통화에서도 대공무기체계 지원을 요청했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양국 협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상당히 많은 규모의 살상무기, 비살상 군수물자 목록을 작성해 지원을 요청했다”며 “목록에는 한국군이 불곰 사업으로 확보한 러시아제 티(T)-80유(U) 전차도 있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가 소련에 제공한 경협 차관을 소련이 망한 뒤 경제 형편이 어려운 러시아가 갚기 어렵게 되자, 1990년대 중반부터 전차(T-80U), 장갑차(BMP-3), 대전차미사일(Metis-M) 같은 무기로 상환한게 불곰사업이다. 국군은 러시아 전차를 30대 가량 보유하고 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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