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이 지난 21일 공개한 레이더 탐지음 파일. 왼쪽이 한국 광개토대왕함이 쏘았다는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이고, 오른쪽은 일반적인 수색 레이더 탐지음이다.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과 한국 구축함의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 조준 여부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일본 정부의 ‘협의 중단 선언’으로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사실관계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가 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을 기색이다. 두 나라를 한동안 뜨거운 분쟁으로 몰고 갔던 핵심 쟁점들은 고스란히 앙금으로 남게 됐다.
■ 초계기의 레이더 탐지음은 증거인가
일본 방위성은 지난 21일 누리집에 올린 ‘최종 견해’에서 초계기가 포착했다는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과 일반적인 ‘탐색 레이더 탐지음’ 파일을 공개했다.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의 특성을 보여주기 위해 두개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방위성이 공개한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은 “삐삐삐삐~” 소리가 18초가량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반면 탐색 레이더 탐지음은 2~3초 간격으로 “삑, 삑, 삑” 소리가 21초가량 단속적으로 울린다.
레이더 전문가들은 방위성이 공개한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이 추적 레이더 탐지음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한다. 추적 레이더는 표적을 쉼 없이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음파로 전환하면 연속적인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를 “레이더가 표적을 물었다”고 표현한다. 탐색 레이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회전하면서 표적을 찾기 때문에 단속적인 소리가 나온다. 탐색 레이더가 간혹 회전을 멈추고 표적에 집중하기도 하는데, 이럴 땐 연속적인 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2월20일 북한 어선 구조에 나섰던 광개토대왕함은 회전형 탐색 레이더(MW-08)를 지향성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당시 근처에 있던 해경정 삼봉호도 레이더를 가동했지만, 역시 표적을 지향하지 않았다. 일본 초계기가 이를 탐지했다고 하더라도 연속적인 소리가 나올 수 없다. 결국 남는 건 광개토대왕함의 추적 레이더(STIR)뿐이다. 광개토대왕함이 당시 일본 초계기를 향해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준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일본이 말하는 화기관제 레이더도 추적 레이더를 가리킨다고 국방부는 설명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것만으론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추적 레이더를 조준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레이더를 특정하려면 탐지 일시, 방위, 주파수, 전자파 특성 등을 함께 따져야 하는데, 일본이 공개한 탐지음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일본 방위성이 공개한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을 “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라고 일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은 싱가포르 실무협의에서도 전자파 접촉음을 들려주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탐지 시간 등을 밝히지 않은 정보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일각에선 일본이 공개한 화기관제 레이더 탐지음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광개토대왕함이 추적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초계기가 지향성 레이더의 특성인 연속음을 탐지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없는 것을 만들어낸 셈이 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이 공개한 탐지음이 당시 획득한 전자파 수신음이라는 것조차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국방부는 “당시 상황과 동일한 조건에서 실시한 두차례 전투실험, 승조원 인터뷰, 전투체계 및 저장된 자료 분석 등을 통해 당시 우리 함정으로부터 추적레이더가 조사되지 않았다는 명백하고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강조한다.
일본 방위성은 초계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 정보를 군사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의 추적 레이더 조준을 받았다면 레이더 경보 수신기에서 경보가 울리고, 화면에는 시간과 방위각 등이 표시된다. 일본이 이번에 공개한 탐지음은 다른 전자전 장비에서 포착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이 앞서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승무원들이 ‘레이더가 보고(observed) 있다’고 말한다”며 “만약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작동했다면 ‘레이더가 탐지했다(detected)’고 말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삼봉호의 레이더와 광개토대왕함의 추적 레이더 주파수 대역이 유사해 일본 초계기가 이를 오인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한다. 하지만 일본이 공개한 화기관제 탐지음은 연속적이다. 일본 초계기가 삼봉호 레이더를 탐지했다면 단속적인 소리가 나와야 한다. 일본 초계기의 전자전 장비가 오작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고백하지 않는 한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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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기의 저공비행은 위협인가
일본 방위성은 ‘최종 견해’에서 지난해 4월과 8월 세차례에 걸쳐 초계기가 한국 해군함에 저공으로 근접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한국 정부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은 항의하느냐는 것이다. 초계기의 위협비행을 강조하는 한국의 대응이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이 이번 사건의 초점을 ‘레이더에서 위협비행’으로 옮기려 한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국방부는 일본이 거론한 상황과 이번의 경우는 초계기의 비행 패턴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당시엔 일본 초계기가 1~2㎞ 밖에서 비행했으나 이번엔 500m까지 접근했다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당시만 해도 한-일 군사당국 간에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가 광개토대왕함의 구조작전 상황을 일본에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일본이 일방적으로 초계기가 사격통제 레이더에 쏘였다고 발표하고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우방국으로서의 신뢰를 깨뜨렸다”고 말했다.
초계기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서 규정한 안전고도 150m를 지켰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국은 불쾌감을 표시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의 규정은 군용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데도 일본이 억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이 말하는 150m는 민간항공기도 사람이나 건물이 없을 경우 안전을 위해 준수해야 하는 최저고도”라며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충분한 고도가 아니라 반드시 피해야 할 저고도라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최종 견해’에서 당시 날씨가 쾌청했다고 주장했다. 파도가 높고 기상이 나빠 구조작전에 애를 먹었다는 한국의 설명을 반박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초계기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기상조건이 열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는 동영상을 정확히 보라고 반박한다. 국방부는 “기상청 일기예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파도가 1.5~2m 정도로 높아 조난구조 환경이 좋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은 일본 동영상에서 보이는 해상에서의 백파(흰 파도)와 우리 동영상에서 보이는 구명정에서의 수평선 기울어짐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바다에서 흔히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통신 불량이다. 당시 초계기와 광개토대왕함이 주고받은 통신을 놓고서도 이견이 팽팽하다. 일본은 당시 세 종류의 무선호출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한 종류의 호출만, 그것도 겨우 청취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신이 가능했던 호출도 잡음 과다, 수신감도 불량, 일측 조종사의 부정확한 영어 발음 등으로 인해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머지 두번의 호출은 아예 녹음조차 돼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두번의 호출이 실제로 송출됐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녹음기록 등을 보여달라고 일본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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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인가 한-미-일 협력인가
일본 방위성이 ‘최종 견해’에서 ‘협의 중단’을 선언한 직후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더불어 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일 방위협력을 강조한 일본 방위성의 ‘최종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지역안보 차원에서 한-일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우려한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일본의 일부 언론은 일본 정부가 갑작스럽게 ‘협의 중단’을 선언한 배경에 한-일 갈등의 확산을 원하지 않는 미국의 요청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국방부는 미국의 중재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중재했다는 얘기를 공식으로 들은 바 없다”며 “다만, 우리의 상황을 미국 측과 교감하고,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감과 공유’와 중재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국제적인 여론전으로까지 비화한 이번 분쟁은 향후 한-일 관계에 앙금으로 남게 됐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의 반발로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에 짐이 더 얹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선 한국의 위협을 가정하고 선전함으로써 군사적 행보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런 구도가 강화되면 한-일 군사협력에도 일정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국방부는 이번 사안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당장 연관짓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협정 문제는 별도의 검토 절차를 거쳐 올해 8월께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