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8일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힌 동창리 서해 발사장에는 인공위성 발사대와 엔진 시험장이 있다. 미국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으로 간주해왔다는 점에서 군사적 민감도가 높은 곳이다. 북한이 북-미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앞두고 미국의 선택을 거듭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대륙간탄도미사일용 고체연료 시험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를 둔다. 인공위성용 신형 액체연료를 시험했다는 관측도 있으나, 어느 것이든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연관성이 있다. 인공위성 발사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기술을 활용한다. 이번 시험을 진행한 곳이 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국방과학원이라는 점도 이번 시험의 군사적 성격을 시사한다.
엔진 시험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레드 라인’을 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판을 깨지 말고 모멘텀(동력)을 유지하자는 태도이지만, 북한은 압박을 최대한 끌어올려 연말까지 담판을 지을 계기를 찾으려 한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미국이 안전 보장, 제재 해제와 관련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데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7일(현지시각)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화는 시간을 벌려는 속임수”라며 “비핵화는 이미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일정을 볼 때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고 짚었다.
북한의 이번 시험이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책임을 묻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다음 조처로서 인공위성 발사를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최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자신들이 취한 비핵화 선제 조처에 대해 미국이 값을 치르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등 배신감만 안겨줬다고 비난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구축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에 합의하고, 동창리 엔진시험장 일부를 해체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그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시험은 북한이 그런 약속에 더는 구속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의 이번 시험이 북·미가 연일 위협적인 언사를 주고받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지난 3일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자,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이 곧바로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그 어떤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임의의 수준에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럼에도 북·미는 먼저 판을 깨지는 않으려 애쓰며 서로 공을 넘기는 모양새다. 고유환 교수는 “다음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에 달려 있다”며 “북·미가 파국으로 가지 않고 협상 모멘텀은 유지하는 극적인 타협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조성렬 위원은 “북한이 이달 하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지금까지의 노선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 등을 보내 미국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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