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6·15 20돌 행사 메시지에 대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막말을 퍼붓자, 청와대가 즉각 “더는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쌓았던 신뢰가 바닥을 드러내며 남북관계를 회복 불능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이날 새벽부터 가능한 채널을 총동원해 남한을 향해 속사포를 퍼부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를 내어, 문재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문 대통령의 6·15 20돌 행사 메시지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을 겨냥해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며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그간 지적해온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짚는 동시에 남북 간 합의사항 이행이 진척되지 않은 데 대해 직설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며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 순간까지도 외세의 바지가랭이를 놓을 수 없다고 구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남한의 대북특사 제안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 특사를 보내고자 하며 특사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으로 한다”고 “간청”해왔으나,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리었다”고 보도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지구에 연대급 부대와 화력구분대 전개 △비무장지대 민경초소(감시초소·지피·GP) 재진출 △전선 경계 격상 및 접경지역 군사훈련 재개 등의 군사행동 계획을 밝힌 뒤 이른 시일 안에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도 강경하게 맞섰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김 제1부부장 담화에 대해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라며 “북측의 이런 사리분별 못 하는 언행을 더는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대북특사 제의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전례없이 비상식적인 행위”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결과는 전적으로 북측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 수석의 이날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메시지 가운데 비판의 수위가 가장 높다. 대북정책의 기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회에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요청한 것도 사실상 거둬들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시점에서는 (국회에 비준 요청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내부 논의를 어느 정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입장을 내어 북한군 총참모부가 군사행동을 예고한 것에 대해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병수 성연철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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