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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일 정상회담 15분이냐 1시간이냐 …왜 이렇게 예민한 걸까

등록 2021-07-13 04:59수정 2021-07-13 08:27

1년 7개월 만 정상회담 격식 둘러싸고
한-일 양국 ‘불꽃 튀는’ 신경전 이어가
일본은 강제동원·위안부 양보 요구
한국, 방일 ‘조건’으로 수출규제 해제 요구

23일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외교 당국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얼핏 보면 1년 7개월만에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15분 정도 약식’으로 할 것인가, ‘한 시간 정도 정식’으로 할 것이냐라는 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면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해묵은 현안에 대한 견해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못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국 콘월에서 지난달 12~13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양국 정산 간의 ‘약식 회담’이 무산되고 난 뒤, 양국은 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한 외교 당국 간 물밑 교섭을 이어왔다. 극비리에 이어지던 방일 관련 논의를 먼저 공식화한 것은 한국이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7일 <문화방송>(MBC) 아침 라디오에 출연해 “한-일 간 정상회담이 열렸으면 좋겠고, 그 결과 한-일 간에 현안으로 된 갈등들이 풀리는 성과도 있으면 좋겠다”라며 “일본 정부가 이제 거기에 어떤 답을 저희에게 주시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현안 문제에 대해 “한국의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문 대통령이) 방일할 경우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으로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회담 자체는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비쳤다. 스가 총리 입장에선 G7에서 문 대통령의 회담 요청을 거부한 데 이어, 자기집 앞마당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석하겠다는 이웃 나라 정상의 요청을 재차 거부할 명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회담 개최가 결정되자 곧바로 격식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1일 1면에서 한-일 양국 정부가 문 대통령이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에 맞춰 “회담할 방침”이라고 전했지만, <교도통신>은 같은 날 “한국은 본격적인 정상회담의 개최를 기대”하고 있지만, 스가 총리는 “전 위안부와 전 징용공을 둘러싼 배상 문제에서 한국이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을 ‘특별 대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6월 말에 정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한 총리관저 관계자를 인용해 “문 대통령을 포함해 1명당 (회담 시간은) 원칙적으로 15분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가 총리가 문 대통령을 다른 인사들과 똑같이 대우하면서 사실상 ‘들러리’를 세우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일본이 이 같은 도발적인 내용을 공개한 것은 물밑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과 위안부 판결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일본이 요구해온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자 이제 한국이 반격에 나섰다. 이 보도를 접한 외교부는 11일 밤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양국 외교 당국 간 협의 내용이 최근 일본 정부 당국자 등을 인용하여 일본의 입장과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언론에 유출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양 정부 간 협의가 지속되기 어려우며, 일본 측이 신중히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진행된 물밑 교섭을 통해 2019년 7월 일본이 취한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선 “철회”를 요구하면서, 일본이 원하는 과거사 현안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선 “한-일 외교 당국 간 대화를 통해 협의를 해 나가자는 입장”(11일 외교부 입장문)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요구는 ‘현금’으로 얻어내고, 일본의 요구는 ‘어음’으로 주겠다고 밝힌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서 치러지는 도쿄 올림픽에 문 대통령의 방문을 지렛대 삼아 일본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지금 중요한 것은 “격식과 성과이다. 더 이상 일본의 반응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격식이란 ‘1시간 정도의 정식 회담’, 성과란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 왔던 ‘수출규제 조처 철회’ 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이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등 현안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해온 일본 입장에선 1시간 정도의 정식 회담에 응할 경우 이내 몰아칠 국내 여론의 압박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명하자, 일본 정부는 다시 한 발 빼는 반응을 보였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12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날 나온 외교부 입장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 외국 요인이 출석하는 것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초대의 주체가 아니다. 일-한 정상회담의 유무에 대해서 역시 가정의 질문이니 답하는 것을 삼가겠다. 다만 스가 총리가 일전에 말했듯 ‘대통령이 방문하면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은 정부의 인식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거듭 “향후 일본 측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의 서면 문답에서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용의는 있으나, 회담이 개최되면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최근 일본 언론 보도를 볼 때 정상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 문제나 한일관계 개선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인상이 있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15분 회담’과 ‘1시간 회담’을 둘러싼 양국의 힘겨루기가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간만에 양국 간 감돌았던 ‘온기’가 사라지고, 문 대통령의 방일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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