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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바이든정부 싱가포르 선언 존중한다는데…왜 북-미대화 힘든가요?

등록 2021-05-03 13:33수정 2021-05-03 15:14

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북한 입장에서 살펴본 현재 한반도 정세
남북미 정상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하고 있다. 이 시간은 돌아올 수 있을까. 판문점/연합 조선중앙통신
남북미 정상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하고 있다. 이 시간은 돌아올 수 있을까. 판문점/연합 조선중앙통신
앞으로 4년 간 한반도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마무리 됐습니다. 당장 관심을 끄는 것은 2019년 10월 이후 중단된 북-미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줄 만한 한-미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화 재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미국의 입장을 봅시다. 지난달 30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과 미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모아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2018년 6월12일 북-미 1차 정상회담의 성과물인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실현해 가자는 쪽으로 대북 정책의 기조를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키 대변인은 지난 브리핑에서 “우리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일괄타결(그랜드 바겐·빅딜)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익명의 미 고위 당국자는 1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우리의 접근은 싱가포르 합의와 다른 이전의 합의들 위에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약이 들어 있는 귀중한 문서이고,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는 북이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줄곧 주장해 왔던 비핵화의 방법론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결론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용적인 접근이라 부를 만합니다. 얼핏 볼 때 북한에게 그리 나쁜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의 첫 반응은 사납기 그지없었습니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2일 바이든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미국이 주장하는 ‘외교’란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우기 위한 허울 좋은 간판에 불과하며, ‘억제’는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라며 “미국의 새로운 대조선 정책의 근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선명해진 이상, 우리는 부득불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북한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허무하게 결렬됐던 2019년 2월 말 하노이로 시계 바늘을 돌려봐야 합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허무하게 실패한 뒤 북은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북의 최고 존엄이 50시간 이상의 힘든 기차여행을 감수하며 하노이까지 달려가 자신들 입장에선 ‘최고의 카드’라 생각했던 영변 핵시설을 통째로 내던졌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자신들이 원했던 2016년 이후 부과된 11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 가운데 민수에 관련된 제재를 푸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하노이 결렬을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일시적 장애’라 생각했던 한국, 미국과 달리 고립된 북한의 고민은 실존적이고 근본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이 하노이 이후 수정된 대외 전략을 공개한 것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서였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의 이틀째인 12일 시정연설에서 하노이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를 “선 무장해제, 후 제도전복야망을 실현할 조건을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쓴” 것이라 평가하면서,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그 무슨 제재해제의 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 있으며 적대세력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의 제재를 ‘상수’로 받아들인 이상 북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경제적으로는 ‘자력갱생’이었고, 안보적으로는 ‘적대시 정책의 철회 요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미 사이에 뿌리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 조미공동성명(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리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 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리해 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미국이 제3차 조미 수뇌회담 개최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노이 조미 수뇌회담과 같은 수뇌회담이 재현되는데 대하여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습니다.

(중략)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2차 조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며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 보면,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 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남과 미국의 반응은 썰렁할 뿐이었습니다. 남은 북이 ‘적대시 정책’의 핵심으로 지적해 온 F-35 등 첨단 자산들을 대거 사들여 배치를 시작했고, 북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2019년 8월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어 국방부는 8월15일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공표해 5년 간 무려 290조5000억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0년 국방비는 사상 최초로 50조원을 넘어 일본과 같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군비 강화가 이뤄진 것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미의 깜짝 만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언론 앞에서 자신이 원했던 멋진 사진을 원 없이 찍을 수 있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북은 그럼에도 마지막 기대를 걸고 10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회담에 임했습니다. 이 회담을 6시간 만에 중단하고 주스웨덴 북한 대사관 앞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협상 의욕을 떨어뜨렸다”고 말했습니다. 허무하게 2019년이 마무리된 뒤 새해가 밝았지만, 북은 코로나19, 수해, 제재로 인한 3중고 속에서 큰 고통을 맛봐야 했습니다.

북-미 실무협상의 북쪽 협상 대표인 김명길(가운데) 외무성 순회대사가 2019년 10월5일(현지시각) 저녁 6시30분께 스웨덴 스톡홀름 북한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통해 “협상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북-미 실무협상의 북쪽 협상 대표인 김명길(가운데) 외무성 순회대사가 2019년 10월5일(현지시각) 저녁 6시30분께 스웨덴 스톡홀름 북한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통해 “협상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이런 시간을 견뎌낸 뒤 북한은 2021년 1월 열린 8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판 ‘전략적 인내’라 할 수 있는 새 노선을 밝히게 됩니다. 어차피 자신들이 원하는 정세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니 자력갱생과 핵무력 증강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버텨나가겠다는 병진노선 2.0 전략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에게는 “상대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에게는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서도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나라처럼 항시적으로 전쟁 위협을 받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 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외면사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데 대한 북남 합의 리행에 역행하고 있다.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주권에 속하는 각종 상용무기 개발사업에 서는 ‘도발’이라 걸고 들면서 무력 현대화에 더욱 광분하고 있다.

(중략)

(김정은 위원장은 보고에서)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우리 당의 립장을 엄숙히 천명하였다. 또한 우리 공화국이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려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람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확언하였다”

북은 자신들을 대하는 남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단기간에 철회되지 않을 것임을 각오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앞서 언급한 병진노선 2.0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북은 “적대 세력들의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 자체가 종식될 때까지 나라의 군사적 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것, 즉 핵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언급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인 ‘전술핵 무기’ 개발과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SLBM)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도 남과 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초 예고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자 김여정 부부장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같은 달 15일 “전쟁연습과 대화, 적대와 협력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며 △대남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한국의 통일부)를 정리하는 문제 △금강산 국제관광국 등을 없애는 문제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파기하는 문제 등의 보복 조처를 언급합니다. 남북 관계를 사실상 포기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이어 3월25일엔 새로 개발했다는 신형전술유도탄(KN-23·북한판 이스칸데르)을 시험발사하는 실력행사에 나섭니다. 한-미-일 정보당국은 이 미사일이 “약 450㎞ 비행했다”고 밝혔지만, 서욱 국방장관은 4월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의 “탐지 자산으로 볼 때 동해로 발사하면 지구 곡률 때문에 아래쪽에서 잘 안 보인다. 아래서 풀업(pull-up) 기동을 해서 생각한 것보다 더 나가 600㎞로 나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풀업 기동이란 적의 미사일 요격망을 피하기 위해 하강 단계에서 수평 비행을 거쳐 급상승하는 변칙적인 움직임을 띠는 것을 말합니다. 게다가 북은 이 미사일의 탄두 중량이 무려 2.5t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여 요격이 쉽지 않은 신형 미사일에 전술핵을 탑재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가공할 능력을 뽐낸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이어져 온 만큼 한-미의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앞서 살폈듯 북의 요구는 두개입니다. 첫째, 적대시 정책의 철회입니다. 북한이 강조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의 두 기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 첨단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 금지입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한때 중단했던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 실시한다는 입장이고, 전시 작전권 환수를 원하는 문재인 정부 역시 이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 정부가 F-35 등 첨단 장비 도입 계획을 단기간에 철회하길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에이비시>(ABC) 뉴스에 출연해 자신들의 대북 정책이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에이비시>(ABC) 뉴스에 출연해 자신들의 대북 정책이 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두번째는 새로운 셈법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 이에 대해 명확한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셈법은 하노이에서 실패로 끝난 교환 공식보다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으 뜻하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북한이 만족할만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북한의 반발이 나오자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미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우리 정책은 적대를 위한 게 아니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해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직 말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북한을 설득하려면 내용이 채워져야 하고 서로 신뢰를 쌓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분간 북-미 대화는 실마리를 잡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북은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자력갱생과 핵무기 증강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이목을 잡아 끌기 위해 위험한 전략적 도발을 시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참고도서

정욱식,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2021·유리창)

조성렬, <한반도 비핵화 리포트>(2019·백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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