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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어려울 때 도움 주고 받아…한국도 중국도 잊어선 안돼”

등록 2022-08-23 07:00수정 2022-08-23 08:37

한-중 수교 물꼬 튼 권병현 전 주중 대사
수교 협상때 ‘송무백열’ 꺼내
이젠 ‘음수사원’ 지혜가 필요
한국, 미국에도 중국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중 수교 만류한 김일성
“조선의 길 가겠다” 핵 선택
권병현 전 주중대사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사단법인 미래숲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권병현 전 주중대사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사단법인 미래숲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중 수교는 한국에도, 중국에도 이익이 됐다. 서로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 받았다는 점을 한국도, 중국도 잊어선 안된다.”

권병현 전 주중 대사(84)는 외교부 본부대사 시절인 1992 실무협상 대표로 한-중 수교의 물꼬를 텄다. 또 김대중 정부 첫 주중 대사로 현장을 누볐고, 은퇴 이후엔 중국 네이멍구 사막지대에 나무를 심어가며 한-중 두 나라 미래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는 권 전 대사에게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와 미-중 전략경쟁 격화 속에 한국 외교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후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미래숲의 서울 무악재 사무실에서 1시간30분 남짓 이뤄졌다.

—30년 전 한-중 수교 실무협상 대표를 맡았는데.

“당시 최대 쟁점이 우리는 대만, 중국 북한이었다. 철저히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우리 쪽 실무진은 나를 포함해 3명 뿐이었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서울 동빙고동 안가에서 협상 준비를 했다. 1992년 4월 홍콩을 거쳐 처음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더니, 키가 장대 같이 큰 남성 3명이 대기하고 있더라. 그 가운데 1명이 싱하이밍 현 주한 대사다. 곧바로 댜오위타이 국빈관 초대소로 이동해 외부 출입마저 삼간 채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이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말(1993년 2월)까지 북방외교를 완성하고 싶어했다. 중국 쪽은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민주화 운동 유혈진압)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서방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자칫 개혁·개방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때 협상을 시작하면서 처음한 말이 ‘송무백열’((‘소나무 무성함을 잣나무가 기뻐하다’는 말로,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한다는 뜻) 네 자였다. 한-중 양쪽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 수교가 가능했다.”

—한-중 수교가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결정적 계기였다는 지적도 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91년 10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쪽이 한-중 수교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김 주석은 ‘미국, 일과 수교 준비가 끝날 때까지 (한-중 수교를) 2~3년만 기다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듬해 4월 양상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해서 다시 한-중 수교 시점이 가까워질 수 있다고 통보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를 위한 1·2차 협상을 한 뒤, 그해 6월 3차 협상을 서울에서 했다. 이 협상에서 만들어진 잠정 수교협정문을 들고 당시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의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김 주석은 평양을 비운 채였다. 뭔가 불길한 낌새를 챘던 거다. 특사단은 묘향산까지 찾아가 김 주석을 만났는데, 북-중 최고위급 접촉 치고는 이례적으로 짧았다.

당시 접촉에서 한-중 수교가 임박했다는 전언을 들은 김 주석은 “중국은 중국의 길을 가라. 조선은 조선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듬해인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소련이 몰락하고, 혈맹인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를 한 상황이었다. 김 주석이 말한 ‘조선의 길’은 핵무장이었다. 이후 2000년까지 북한 최고 지도자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첫 주중 대사로 임명됐을 때다. 그해 3월 말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된 후진타오 당시 부주석이 방한했다. 김 대통령은 후 부주석을 따로 서재로 불러 ‘대통령이 되고 보니 나라 금고가 비었더라. 도와달라’고 체면도 버리고 얘기했다. 중국에 부임해 보니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흑자도산을 하게 생겼더라. 중국에서 흑자를 많이 냈는데, 상황이 좋지 않은 본사에서 자금을 모두 끌어갔기 때문이다. 중국 쪽에 ‘도와달라’고 청했더니, ’한국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에 감동했다. 염려 말라’고 했다. 결국 관계 기관장 회의를 통해 은행권에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 기업과 똑같이 대우해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중국 진출 우리 기업의 숨통이 그제야 트였다.

2016년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과 중국의 보복조치 이후 한-중 관계가 나빠졌다. 양국 모두 손해 본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서로에게 이익이 된 것을 생각해야 한다. 수교 30년 만에 저개발 국가였던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이 됐고, 중진국이던 한국은 어엿한 선진국이 됐다. 중국도 우리 덕을 봤고, 우리도 중국 덕을 봤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목 마를 때 물 한 바가지 건네 준 이웃을 잊어선 안된다. 얼마 전 한-중 관계 행사에서 ‘음수사원’(‘물을 마실 때 수원지를 생각한다’는 뜻)을 말했더니, 중국 쪽도 공감하더라.”

—미-중 갈등 격화 속에 양국의 전략적 이해 충돌 사이에 낀 나라가 많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데.

“그게 한국 외교의 가장 큰 과제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기 무게가 가벼울 때는 열심히 무거운 쪽에 가서 붙어야 한다. 또 무게가 어느 정도 나가는 쪽은 되도록 저울의 가운데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저울대가 내 무게가 가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내 전략적 가치도 커진다. 무엇을 걱정하는가? 우리의 무게와 전략적 가치가 이미 엄청나게 커졌는데 여전히 몸집 작을 때, 냉전시절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미들파워(중견국) 외교’란 말이 있다. ‘강소국’이란 번역도 있던데, 강대국에 견줘 ‘강중국’이란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강대국의 세력 판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를 말한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문화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을 어느 한 나라가 압도하면 위태로워 진다. 유럽에서 압도적 강국이 형성될 때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그 반대편에 선다. 유럽대륙의 세력균형이 어느 일방으로 치우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영향력이 커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아시아 순방 때 일본보다 한국에 먼저온 이유가 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세계가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한테 ‘아니다’라고 하는 건 금기처럼 여긴다.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미들파워’ 외교는 바둑으로 따져 반집짜리 승부다. 한국 외교의 숙명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 다만 절호의 기회를 맞은 건 분명하다. 미국과 가깝다는 ‘보수’라 더욱 그렇다. ‘난 네 친구이니 이해하고 참아달라’고 할 수 있다. 이념도 좌우도, 진보도 보수도 필요 없다. (냉전식 사고 같은) 깨진 냄비 집어던지고,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도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오는 10월 말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제20차 당대회란 국내정치 일정이 끝나면, 중국은 한-중 관계 복원의 계기를 찾으려 할 것이다. 중국은 ‘체면’을 중시한다. 정책 변경의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때를 놓쳐선 안된다. ‘음수사원’의 지혜를 기억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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