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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로씨야와 한 전호에”…북한, ‘중-러 등거리 외교’ 나섰나

등록 2023-01-30 06:00수정 2023-01-30 18:15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 2019년 3월2일 베트남 하노이의 호치민 기념관에서 열린 헌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 2019년 3월2일 베트남 하노이의 호치민 기념관에서 열린 헌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이 주장하는 ‘러시아에 무기 지원설’을 반박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중립’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를 두둔하고 나섰다. 미국·한국과 대결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발전시켜 중-러 ‘등거리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 담화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정당한 안전이익을 침해하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계단식으로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그 누구의 ‘도발’에 대비해 ‘확장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간판 밑에 조선반도에 핵타격 수단들을 빈번히 끌어들이고 있는 비론리적이고 기형적이며 강도적인 미국식 사고의 연장으로서 황당하고 어이없는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 국장은 “미국은 또 다시 무근거한 ‘조로(북-러) 무기 거래설’을 꺼내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저들의 무기 제공을 정당화해보려고 어리석게 시도했다”며 “국제사회의 정당한 우려와 비난을 무시하고 주력 탱크와 같은 공격용 무장장비를 우크라이나에 기어코 들이밀려는 미국의 처사는 불안정한 국제정세를 지속시키려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에이브러햄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직후인 지난 27일 밤에는 김여정 북한 중앙위 부부장이 담화를 냈다. 김 부부장은 “유럽 대륙 전체를 엄중한 전쟁 위험에 노출시키고 크고 작은 우려들을 산생시켜온 미국의 책동이 이제는 더욱 위험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며 “로씨야(러시아)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을 더욱 확대하여 저들의 패권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로씨야의 안전 우려를 전면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 액수의 군사장비들을 넘겨주면서 세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파괴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나라들은 주권국가들의 자위권에 대하여 시비할 자격이나 그 어떤 명분도 없다”며 “우리는 국가의 존엄과 명예,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중국과 관련해서도 자주 쓰지 않는, ‘한 전호에 있다’는 표현을 대러 관계에서 이례적으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라며 “남한 및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국과 협력을 강화해 자력갱생을 도모하겠다는 8차 당대회(2021년 1월) 이후의 기조를 보다 분명히 한 셈”이라고 짚었다.

북한은 애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2일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상정됐을 때, 중국·쿠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국이 기권했을 때도 북한은 러시아를 포함해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였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입장”이라며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북-러 철도 연결을 통한 제재 우회를 시도해왔고, 전후 돈바스 지역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를 위해서라도 러시아를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북 입장에선 ‘안전보장’만 믿고 1994년 비핵화에 합의한 우크라이나의 현실에서 교훈을 얻었을 수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명시적 지지 표명은 명목적으로나마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이 대외협상 국면에서 한-미가 빠진 자리를 러시아로 메꾸면서 1960년대 이후 다시 ‘중-러 등거리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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